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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방송계] 시대를 꿰 뚫는 펜,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선희 동문(교육,87년 졸)

  • 등록일2016.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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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중앙일보의 많은 독자들이 수요일만 기다립니다. 바로 <양선희의 시시각각> 코너 입니다. 매우 통찰력 있으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칼럼입니다. 언론고시 준비생들이 필사대상으로 항상 꼽을 만큼 유려한 글을 써내는 양선희 논설위원. 이화투데이가 만나봤습니다. 


Q.이화투데이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83학번으로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 매주 수요일에 <양선희의 시시각각> 고정칼럼을 연재중이고 소설가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현재까지 여류 삼국지(나 여, 흐를 류)와 책 2권 총 3 권의 책을 발표했고 단편 활동도 이어가고 있어요.

  

Q.언론사에서 논설위원이라는 높은 자리에 계십니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시는데 어려웠던 점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특히나 여성으로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우리 회사에 수습으로 들어왔을 때 그게 아마 11년 만에 처음으로 여자가 뽑힌 것이었죠. 회사에서 처음에는 사회부 기자를 여자를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수습기간에 사회부에서 경찰 기자를 1달 반을 해야 하는데 저를 빼더라고요. 근데 제가 자원해서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사회부로 발령받았죠. 그 후에도 결혼을 하니까 생활부로 부서를 바꾸더라고요. 6개월 뒤에 사회부로 다시 갔죠. 그냥,회사도 저한테 적응을 하고 저도 회사한테 적응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국장님이 바뀌실 때마다 사회부와 다른 부를 계속 왔다갔다했던 거구요. 2-3년 동안 부서를 5-6개 옮겨 다녔으니까요. 근데 저를 시작으로 여자도 기자를, 사회부 기자를 할 수 있다는 게 회사 내에서 생긴 것 같아요. 회사가 여성기자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고 봐야죠. 뒤로는 여자 기자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고요. 제가 여성 최초를 많이 끊었다고 할 수 있죠.(웃음) 산업부 기자도 처음, 시청에 처음 나가기도 했고, 지금은 유일하게 여성 논설위원으로 있어요.

  

Q.매주 <양선희의 시시각각> 칼럼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계시는데요, 주제를 선정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신문기사는 시사적이어야 해요. 현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그때 어떤 사안이 벌어졌는지를 봐요. 매주 금- 토쯤 주제를 선정하죠. 어떨 때는 일요일까지 결정이 안날 때도 있어요.(웃음) 화요일이 마감인데 그때 써야할 경우도 있어요. 시기성, 시의성이 중요한 만큼 전날 결정되었던 주제를 당일 날 엎기도 하구요.

  

Q.또한 매주 칼럼을 쓰시면서 "이것만큼은 놓치지 말아야지" 생각하시는 어떤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항상 하는 것의 기준은 인권. 휴머니즘이에요. 사실 어떤 기자로서의 거창한 좌우명 같은 것은 없어요. 저는 그보다도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는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도덕률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법률보다는 도덕률의 원칙에서 누군가는 따져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는 저를 좌파라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저를 우파라고 하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어느 정파에 대해서도 속해있지 않아요. 오히려 좌와 우에 구애받지 않고 좌와 우를 모두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신문 글이라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글을 던져 놓고, 나를 위해 쓰는 글이었음에 만족하기보다 상대방을 위해 쓰인 글이 좋은 글이죠. 그래서 옛날 글도 일부러 보지 않아요.던져진 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생각도 변화하고 상황도 변하죠. 그렇기 때문에 항상 똑같은 말을 하기 보다는 변화한 흐름 속에서 어떤 것이 맞을까 고민하고 내린 생각이 최적의 답이에요. 그래서 내 생각을 방해하는 독서도 하지 않아요. 모든 독서의 기준은 나 인거죠. 내가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글, 그런 책을 찾아 읽어요.

  

Q.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나요?

10살 때부터 소설을 썼어요. 쓰는 것이 습관이 돼있어요. 책을 읽는 것보다 쓰는 시간이 많았죠. 최근에 미국의 콜롬비아대에서 연수를 했어요. 오르한 파묵은 매일 반 페이지의 글을 쓰지 못하면 너무나 괴롭다하더라고요. 거기서 절절하게 공감을 했죠. 저는 읽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많아요.

독서를 해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지식을 쌓아서 자랑하기 위해서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써보세요. 독서보다 쓰는 게 먼저에요. 써야지 자기 것이 된답니다. 저는 병법 공부를 오래해서 삼국지를 빨리 썼는데 그 책을 쓰고 나서 삼국지를 진짜로 이해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대학 이전에 맹목적인 독서기간이 있어야 해요. 나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 라고 찾아볼 만큼의 독서량이 확보되어야 한답니다. 어떤 글 쓰지 고민일 때 , 어떤 식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책을 읽고 그 사고관을 도움 받을 수 있죠.

  

Q.언론사 준비를 하는 이화인들이 많은데 조언 한 말씀 해주세요. ‘어떤 준비‘가 필요하고 ‘어떤 기자' 가 되어야하나요?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라고 신입 기자에게 질문을 하곤 해요. 편견 없이, 객관적인 시선을 가져야한다는 대답을 많이 듣는데요. 사실 이런 것은 나중 일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매체에 들어가는 것이냐. 저널리스트는 어떤 저널에 속해있는가. 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처음에 황색언론에 들어가면, 황색저널리즘기자가 되는 것이죠. 어떤 매체의 기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 첫 번째로 고민이 필요하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해결되어야 하겠죠.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그 꿈을 빨리 버려야 해요. 언론사는 들어가기 힘들어요. 이상한 언론사에서 이상한 버릇이 생겨서 ‘나쁜 기자’ 가 될 수도 있죠. 언론인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한’을 가지고 자괴감을 가지고 살지 말았으면 해요. 기자에만 매달리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기자라는 직업이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인 직업은 아니랍니다.


Q.기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나요?

저는 굉장히 우연하게 기자가 됐어요. 원래는 공부를 할 것이었는데, 대학시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1년간 휴학하고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신문에서 기자 공고를 보고 한번 해볼까? 하고 지원했는데 합격했네요. 

저 같은 경우에는 어떤 직업을 꿈꿔본 적이 없어요.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죠. 사실 작가로 등단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46살에 등단했고 그래서 내 꿈을 다 이뤄봤다고 할 수 있네요. 아, 또 발레리나를 하고 싶었는데 30대 때 3년간 배우기도 했고요 (웃음) 발목이 나가고야 이 길이 아니었구나 싶었죠. 

잘 알지도 못하는 꿈을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하고,세뇌해 그것을 믿어버리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꿈에 사로잡혀다가 막상 자신의 길이 아니었던 경우를 꽤 봤어요. 어떤 ‘직업’ 에 발목이 잡혀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Q.엄마와 기자로서 갈등은 없으셨는지요? 

저는 일과 가정을 철저히 구분했어요. 일할 때는 아이 생각을 하지 않고, 가정에 있을 때는 아이에게 올인했죠. 그래서 지금까지 아들의 아침밥을 챙겨주지 않은 적이 없어요. 사실 직장에 다니면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가정에 있는 동안 아이를 잘 먹이고, 많이 안아줬어요. 아이의 학예회, 운동회도 빠진 적이 없답니다. 아이 때문에 일이 힘들다는 말은 잘 이해가 안가요. 일하면서 떳떳할 수 있는 이유도 아이 덕분이고, 아이 덕분에 제 인생이 더 풍부해지는 것 같아요. 


Q.재학생 때 어떤 학생이셨는지요?

저는 미팅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수업도 빠진 적이 없고요. 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당시에 도서관에 각 과 1명의 학생만 선발해 자리를 주는 정독실이 있었는데, 거기에 뽑혔었거든요. 

가장 좋아했던 것이 도서관 열람실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이었죠. 읽은 소설만 100권이 넘고, 하나를 읽으면 관련 논문까지 다 읽었어요. 언제는 여기 책장 한줄- 해서 거기 있는 책을 모두 읽어보기도 했어요. 고전 원문읽기, 일본사, 역사소설을 주로 읽었던 것 같네요. ‘나’ 하고 시간을 많이 보냈던 대학시절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그래요. ‘저녁은 취재로 안 먹는다.’를 선포했거든요. 10년차가 지나고는, 외부인하고 저녁약속을 잘 안하고 술도 마시지 않아요. 

  

Q.이화에서의 가르침이 사회에서 어떤 도움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침마다 채플을 했잖아요? 저는 빠져본 적이 거의 없는데. (웃음) 채플이 나중에 보면 도움이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사회에 나와서 이대 출신들을 만나면 비슷한 모습들이 많거든요. 신기하게도 대부분 선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동기들끼리 ‘채플에서 하도 착하게 살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기도 했네요.

     

Q.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요. 그렇게 살다보면, 길이 이루어졌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할 예정이에요. 저는 꿈이 여러 가지라, 어떤 한 꿈에 매몰돼있지는 않아요.

그 중에서 여건이 닿는 일을 하게 되겠죠. 

기자로서는 언론이 세상을 혼란시키는 경우도 많데, 이런 혼란스러움을 어떤 식으로 질서를 잡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싶어요. 계속해서 쓰고 있는 소설도 쓸 거예요. ‘한비자’ 가 제게는 스승인데 한비자에 대해서 더 쓰고 싶어요. 

  

Q.마지막으로 이화의 후배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대학시절에는 맹목적인 독서를 해봐야 해요. 나중에 희한하게, 대학 때 읽은 원전들만 생각이 잘 나더라고요.  

이대 후배들이 제가 쓴 ‘여류 삼국지’ 는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읽기 좋게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놨어요. 삼국지를 읽으면 남성의 조직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사실 아직 은 사회 어디든, 남자가 대부분이잖아요? 지금도 제 방은 저 빼고 다 남자에요. 사회에 나갈 꿈이 있는 여성이라면 조직생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에요.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사회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화투데이 리포터 김혜림(언론정보·14), 장예원(정치외교·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