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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복면가왕 3대 가왕 '종달새', 가수 진주 동문(공연예술대학원·16년 졸)

  • 등록일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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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난 괜찮아’로 데뷔와 동시에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가요계를 뒤흔든 가수, 누군지 아시나요? 가수 ‘진주’로 잘 알려진 주진 동문(공연예술대학원·16년 졸)(이하 ‘진주’)입니다. 올해 2월 이화여대 공연예술대학원 음악공학과를 졸업한 진주 동문은 최근 ‘복면가왕’ 프로그램에서 3대 가왕으로 선정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힘 있는 가창력에 반하는 아담한 체구와 소녀같은 웃음, 그리고 뚜렷한 인생철학이 매력적인 가수, 진주 동문을 이화투데이가 만나고 왔습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이화여대 공연예술대학원 음악공학과를 졸업한 진주입니다. 1997년에 가수로 데뷔한 후, 현재진행형으로 가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요즘은 후학 양성에 힘을 보태서 신인 가수들의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있고, 작곡 활동도 계속 하는 등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습니다.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하신 계기가 따로 있으신가요?

노래는 어릴 때부터 했어요. 집중적으로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게 5살 때부터였죠. 어릴 때 늘 가수라는 꿈과 함께 해 왔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초등학교 때 유니세프 가요제의 한국대표로 뽑히게 됐고요. 그 가요제에는 오드리 헵번, 루치아노 파바로티, 글로리아 에스테판 등의 내로라하는 스타들도 많이 오셨는데, 이 가요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했던 경험을 통해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이 더 확고해졌어요.

그 이후로 많은 가수 분들을 만나면서 가요계에 데뷔하고자 계속 가수라는 길에 노크했어요. 그러던 중 박진영 씨에게 발탁되는 기회가 찾아오면서 급작스럽게 데뷔하게 됐죠. 그렇게 제 대표곡인 ‘난 괜찮아’ 라는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언타이틀’이라는 그룹의 노래에 피처링도 했어요. 그 당시가 IMF 위기로 워낙 힘들었어서 응원가처럼 제 노래를 많이들 불러 주셨던 것 같아요. 이 ‘난 괜찮아’라는 노래가 ‘진주’라는 이름을 크게 각인시켜 줬어요.

뛰어난 가창력을 유지하고 또 키우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뭐 특별한 게 있다기보다는, 그 일을 좋아해야 해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일을 하다가 힘들거나 짜증날 때 노래를 부르거든요.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노래를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더 좋아서 계속 하게 되고. 저는 제가 노래와 함께 상생하면서 생명력을 키우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그 자체가 저를 살아가게 해요. ‘human being(사람)'이라는 말처럼, 저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저를 업그레이드 하는 과정 중에 살아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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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발표해온 곡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Life goes on’이라는 노래를 제일 좋아해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아무래도 힘들 때 함께 한 노래에 애착이 가게 되는데, 이 곡은 제 마음이 힘들 때 쓴 곡이에요. 이 곡을 쓰면서 ‘내 삶은 현재진행형이고 완성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저에게 계속 해 줬어요. 그러면서 제 자신에게 큰 응원이 된 노래인 것 같아요.

어떠한 계기로 공연예술대학원 음악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셨나요? 그리고 특별히 ‘이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가만히 있는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그 당시에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공부는 평생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배움에 대한 허전함을 채웠죠. 그리고 사실 제가 지원한 대학원들 중에는 법학대학원도 있었답니다.(웃음)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제가 다른 학교들에서 강의를 꽤 했는데, 제가 강의하던 한 학교의 학과장님이 이화여대 출신이셨어요. 그전에는 ‘이화여대’ 하면 클래식만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학과장님을 통해서 이화여대에도 음악공학과와 같은 학과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거죠. 그게 이 학교에 진학하게 된 계기였어요.

음악공학과에 진학하면서 처음에는 ‘공학’이라는 말 때문에 좀 겁을 먹었어요. 다행히 공부하다 보니 숫자는 많이 안 나오더라고요.(웃음)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학부에서 작곡에 대해 공부했던 분이라면 아마 크게 어렵지는 않은 전공일 거예요. 관현악법이나 피날레, 그리고 프로그래밍 같은 것들을 다시 요약하고 정리할 수 있는 학문이에요. 음악을 접하고 듣는 것과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그런 측면에서 음악적 지식에 대한 체계를 세우고 또 연구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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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부터 뮤지컬 배우, 교수, 법 공부, 그리고 음악대학원 수료까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예전에 속상한 일이 있었거나 우울했을 때 적어놓았던 메모들을 몇 년이 흐른 뒤에 다시 꺼내 봐요. 몇 년 전 이맘때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거든요. 그 때 그 메모들을 보면서 ‘내가 헛살지 않았고 이때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는 제가 법을 공부할 때 썼던 연습장을 보면서 ‘내가 이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구나’ 느꼈어요.

이런 제 모습이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어 하는 욕망일 수도 있겠고, 열정일 수도 있는데 일단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 하는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내일은 더 잘 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해낼 기대감과 설렘을 갖고 살아요. 이러한 생각과 마음가짐이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 냈던 것 같아요.

한창 활동 중이던 2000년대 초반, 성대 결절로 활동을 중단하는 등 많은 어려움 끝에 무대로 복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들을 어떻게 극복해오셨나요?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귀찮다’예요. ‘귀찮다’라는 말 하나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잖아요. ‘나 오늘 좀 귀찮아’라는 무의식적인 말이 제 삶을 좀먹는 것 같아요. 작은 말이지만 그게 쌓이다 보면 저로 하여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저는 귀찮은 순간이 오면 안 귀찮아하려고 노력해요. 더 어렵고 힘들 것 같은 일을 해보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정신없이 그 일에만 집중을 하게 되니까 자연스레 귀찮음을 극복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저는 시간에 대한 약간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시간을 이렇게 의미 없이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나 그 때 이걸 좀 해볼 걸’하는 후회를 몇 번 해보고 나니까 후회하는 게 정말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도전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막무가내로 돌진했던 게 제 자신을 다스리는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아무래도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까요?(웃음) 그 때는 겁이 없었어요. 어릴 땐 제가 어떤 선택을 해도 그 선택에 대한 결과나 책임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잖아요. 이런 부분 때문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10대였을 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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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에서 처음 섭외연락이 왔을 땐 주저했어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녹화를 해야 하고, 제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노래해야 하는 제약들이 있어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노래만 하는 거니까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아주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봤죠.

제가 이 촬영을 하던 당시에 대학원 학기 재학 중이었거든요. f(x)의 루나 씨가 제 직전인 2대 가왕이었는데, 루나 씨가 저인 줄 안 분들이 꽤 많았어요. 그러다가 제가 바로 그 다음 주에 나가면서 3대 가왕이 됐는데, 교수님께서 여쭤보셨을 때도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탄로 날까봐요. 그리고 나중에 가면을 벗던 날은 거의 학교에 못 갈 뻔 했죠.(웃음)

출연한 소감은… 이게 굉장히 묘했던 것 같아요. 가면으로 눈과 입이 거의 가려진 답답한 상태에서 빗살무늬 사이로 사람이 희미하게 보이다가, 가면을 벗으면 그 느낌이 되게 이상해요. 가면을 벗을 때 들어오는 그 빛이 굉장히 따뜻하고 소중하게 느껴져요. 어두운 터널에서 빛이 있는 밖으로 나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 날 판정단으로 김형석 씨가 계셨는데, 제가 1집 앨범 녹음을 김형석 씨 사무실에서 했거든요. 그리고 처음으로 오디션을 본 장소도 김형석 씨 사무실이었고요. ​그래서인지 뭔가 친정에 온 느낌이었어요. 계속 눈물이 나면서, 처음 오디션을 보기 위해 문을 두드리던 학생 시절의 제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올해로 데뷔한지 20년이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일단 제가 준비하고 있는 앨범들이 있어요. 프로젝트 앨범과 제 앨범, 그리고 신인 프로젝트 앨범까지 여러 개를 진행하고 있죠. 순차적으로 열심히 준비해 선보일 계획이, 또 교수로서 교편에 설 생각도 있어서, 커리큘럼과 수업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선배님께 ‘노래’란? 그리고 선배님께 ‘이화’란?

‘노래’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껌딱지 같이 제게 늘 붙어있는 존재예요. 숨을 쉬지 않으면 사람이 살 수 없듯이 제겐 노래가 호흡 같고, 늘 필요한 에너지예요.

‘이화’란 저에게 있어서 동심인 것 같아요. ‘캠퍼스’라는 것을 정말 몸소 느낄 수 있었거든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 데뷔했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 이화에 와서 대학생활이라는 걸 제대로 체험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학교 가면 다 해봐야지’라는 생각으로 과 티도 열심히 입고 다녔어요. 과 분위기도 정말 좋았고 좋은 동기들도 많이 만나서, 중간고사 때 같이 자리 맡아가면서 공부하고 휴게실도 가보고 편의점에서 컵라면도 먹었어요. 그래서 이화는 제게 제 2의 캠퍼스이자 동심이었던 것 같아요. 동심으로 돌아가서 공부와 휴식을 즐기고 동기들도 만난 그런 장소죠. 다른 분들도 이화를 충분히 만끽하셨으면 좋겠어요.

가수를 꿈꾸는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일단 노래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절실함, 그리고 노래를 함으로써 느끼는 행복함이 필요해요. 지금 행복하냐는 되물음 없이 스스로 행복한 사람, 이런 분들이 가수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가수라는 직업이 단순히 좀 괜찮아 보이고, 요즘 유행이라서 시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되물음 없이 행복한 분이라면 이 길을 향해 꾸준히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앨범이 좀… 가내수공업으로 제작된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노래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곡을 쓰고, 만들고, 제가 이 노래에 익숙해져서 자신감이 붙기까지의 과정이 있어요. 옹기장이들이 빚은 도자기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과감히 깨버리잖아요. 그런 과정이 저에게도 있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대신에 대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기다려 주시면 좋은 앨범으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예술가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법을 특정하거나 정립하는 학과를 개설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밝혀주신 진주 동문! 앞으로의 활동과 꿈을 위해 이화투데이가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손인(전자공·14), 장순영(국문·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