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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2015년 건축사자격시험 최연소 합격자 박한솔 동문(건축·12년 졸)

  • 등록일2016.04.27
  • 6370

박한솔1

우리는 ‘건축사’하면 흔히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건축도면을 바라보며 고심하는 남성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동안 주로 남성이 진출했던 건축 분야에 거센 여풍(女風)을 예고하는 이화동문이 있다. 국토교통부와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주관하는 ‘2015년 건축사자격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하며 이화출신 여성 건축학도로 거듭난 박한솔 동문(건축·12년 졸)을 만나보았다.

1. 안녕하세요, 먼저 선배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07학번으로 이화여대 건축학과에 입학해서 5년제 졸업을 하고, 설계사무소에서 3년 동안 근무했어요. 건축사 준비를 할까 아니면 대학원에 진학할까 고민하던 끝에 2015년 초에 회사를 그만두고 건축사 자격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하고 올해 2016년 1월에 자격증을 받았답니다.

2. ‘2015년 건축사자격시험’에서 최연소로 합격하는 영예를 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우선은 합격이 안될 줄 알았어요. 제가 너무 어리기도 하고 졸업 후에 바로 회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운 좋게 합격해서 정말 기뻤어요. 특히 올해는 건축사자격시험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높은 해여서 더 뿌듯한 것 같아요. 이번 시험 여성 합격자 비율이 30%정도 됐는데, 건축 분야에서는 워낙 여성이 적거든요. 건축이라는 분야가 더 이상 남성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여성에게까지 확대되어 나간다는 점이 여성 건축사로서 가장 뿌듯한 현상이에요. 우리학교 출신들도 올해 많이 합격해서 더 의미도 있고 기분도 좋네요. 합격하고 나서 교수님께서 축하해주시고 주변의 모든 분들께서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3. 건축사자격시험에 합격한 이화 출신들 중에서도 선배님께서는 눈에 띄게 어린 나이에 합격하셨는데요. 남들과 다른 비결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합격해보니 저만 어린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학교 출신 합격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01학번 선배님이 전체 합격자 중에서는 어린 축에 속했어요. 전체 합격자 평균 나이가 만 38세 정도였기 때문에 우리학교 출신들이 전체적으로 보면 나이가 평균보다 다 적었죠.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 다같이 노력했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저만의 특별한 비결은, 제가 경력이 부족해서 공부를 따로 열심히 한 것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박한솔2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이유도 회사에 다니면서 시험 준비를 하기는 어려워서 그랬거든요. 건축 사무소는 다른 회사랑은 다르게 과한 업무 비중에 비해 ‘열정페이(업무량 대비 저임금 강요)’였어요. 제가 근무한 경쟁 설계를 하는 부서는 매일같이 새벽에 끝나고 또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격시험을 공부할 겨를이 없었고 학원에도 다니려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둬야 했죠.

사실 회사를 그만두는 게 저한테는 큰 결심이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오는 불안한 마음이 시험 준비를 더 열심히 하게 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제가 시험에서 떨어지면 회사도 그만둔 마당에 시험에 올인한 것에 대한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하는 거니까요. 이런 생각에 더 열심히 했죠.

4. 건축사자격시험은 국내 건축설계 분야의 최상위 자격시험으로 건축사 사무소나 등록원에서 3년 이상 경력을 쌓은 후 응시할 수 있는 힘든 시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께서 이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무조건 외우는 시험이 적성에 더 맞고, 맞고 틀린 것이 확실한 문제가 더 좋은데 이 건축사자격시험은 그렇지 않아요. 수능 같은 경우는 모의고사 점수가 처음에 70~80점이었다면, 조금만 더 공부하면 90점이 되겠다는 어떤 짐작이 되는데, 이 시험은 답이 없기 때문에  합격선 조차 알 수 없었어요. 적어도 평균이 60점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제 점수가 어디에 속하는지, 또 제가 전체에서 몇 등 정도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계속해서 시험을 보는 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시험장에 가는 시간과 끝나고 집에 오는 시간을 다 합하면 거의 하루 종일 시험을 보는 거잖아요. 건축이라는 분야가, 아무리 작은 집을 짓더라도 최소한 3개월 프로젝트인데, 시험의 경우 이러한 프로젝트를 3시간 안에 끝내야 하니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시간 싸움을 해야 했어요. 이런 점이 힘들었죠.

사실 건축 분야가 여자가 견디기 힘들어요. 법이 바뀌어서 건축학과 5년제를 졸업한 사람만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최소 3년의 회사 근무 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건축사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의 나이대가 높은 것인데, 응시 자격 요건인 그 3년을 채우는 게 어려워요. 저희 07학번 동기들 중에서 회사에 바로 취직한 친구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3년을 쉬지 않고 채운 사람이 저랑 또 한 명밖에 없었을 정도로 힘든 분야가 건축인 거 같아요. 회사에 있는 동안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거지…’ 라는 자괴감도 들었고, 5년 동안 왜 이렇게 고생했는지에 대한 생각이 든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정도니까요.

5. 그렇게 힘든 점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우선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용기를 낸 게 큰 부분을 차지했고, 또 주변에서 많이 격려해 주셨던 게 큰 힘이 됐어요. 저 같은 경우는 교수님들과도 꾸준히 연락을 하는데, 교수님들도 제 선택을 존중해주셨고, ‘너는 1년 안에 반드시 해낼 거다’라는 응원을 해주셨던 게 저에게는 큰 힘이 됐어요.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니 체력도 나아졌어요. 회사 다닐 때에는 없던 알레르기가 돋고 면역체계에 이상이 올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퇴사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체력을 키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더니 좋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건축사자격시험은 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어서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정해진 시간 안에 무조건 문제를 풀고, 모범답안이라고 하는 것과 내 답안을 비교분석해서 빨간펜으로 내가 선생님이 된 것처럼 체크했어요. ‘어떤 면으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다음에 이런 문제가 나오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자’라는 식으로요. 사실 시험이 다가오면 공부가 안되잖아요, 수능도 그렇고.(웃음) 지금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싶잖아요. 그럴 때마다 제가 철을 해서 모아 둔 제 답안을 쭉 읽으면서 마무리를 했는데,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저의 자료들을 꾸준히 정리해놓았던 것이 많은 힘이 됐어요.

6. 진로를 찾지 못해서 고학년이 되어서도 고민하는 이화인들이 많은데요, 선배님께서는 언제부터 건축사라는 꿈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때 에스파냐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에 관한 건축학 관련 책을 우연히 봤는데, 그 때 동경이 생기면서 건축학과로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스스로 이과보다는 문과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건축이라는 것이 이과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문과적 성향이 굉장히 짙은 분야이기 때문에 선택에 확신을 갖게 됐죠.

그런데 진로는 계속 고민 중이고 매번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고등학교 때는 건축가가 꿈이었지만, 사실 취업의 문 앞에 섰을 때에는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기도 했어요. 취업시장에 들어서는 게 무섭기도 하고 제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조금이라도 실무를 먼저 공부해보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바로 진학하는 것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천지차이라고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계속 하고 있어요. 현재에 맞는 현실적인 것들을 하나하나지워가면서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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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건축 분야에는 어떤 진로가 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보통 건축학과에 와서 처음 꾸는 꿈은 훌륭한 건축물을 지어서 스타 건축가가 되는 것이지만, 사실 건축학 자체에도 방향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단정 지어서 이야기하기는 힘들어요. 우리나라가 건설로 성장했기 때문에, 건축보다는 건설회사가 더 큰 회사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학생들은 건축회사로 방향을 돌리는 경우도 있고, 건축 공무원을 꿈꾸는 학생들도 있고, 건축 학자나 건축 미학 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분들도 있어요. 길이 굉장히 많아서 하나로 규정짓기는 힘든 것 같아요.

대학교 2학년 때 한 교수님은 건축에는 적성이라는 게 없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내가 미술적 성향이 강하면 미학적 건축 쪽으로 나가는 거고, 글을 잘 쓰면 건축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될 수도 있죠. 정말 다양한 길이 열려있어요.

8. 건축계가 남초 사회 중 하나인데 혹시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확실히 남자가 많기는 해요. 남자가 주인 산업인 것도 사실이고요. 이대에도 건축학전공이 생긴 지 얼마 안됐잖아요. 사실 건축 업계에서 ‘이화여대 나왔어요’하면 이대에도 건축학전공이 있었냐고 놀라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우리 학교에서 생긴 지 얼마 안됐다는 소리는 여성의 진출이 늦은 분야라는 말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남성 마인드로밖에 생각을 못해서 견디기 힘든 부분이 큰 것 같아요. 여성으로서 충분히 배려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게 잘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건축계에서 여성이 일하기에 힘든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분명히 내가 여성이라서 강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찾아야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체력적으로는 부족할지 몰라도 빠른 센스와 눈치와 분위기 파악 등으로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는 두각을 나타내는 우리학교 선배님들과, 여성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선배님들이 많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힘이 많이 돼요.

학교에 강소영 교수님이라고 실무도 계속 놓지 않으시면서 저희 수업도 함께 해주셔서, 제가 3개월에 한 번씩 찾아뵙고 상담하는 선생님이 계세요. 제 앞에 저의 길을 먼저 걸어 간 선배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는 선배이자 한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충고뿐만 아니라 여자로서 해줄 수 있는 충고,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에 대한 결과를 먼저 알려주세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시행착오를 덜 거치고 여기까지 해낼 수 있었던 거예요.

9. 이화 재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건축학전공에서는 설계수업이 정말 중요해요. 하나에 6학점이라서 망치면 끝나거든요.(웃음) 그런데 저는 친구들 말을 빌리자면 ‘포기가 빠른 여자’였어요. 재밌는 건 미친 듯이 신나서 하고, 그러다가 각이 안 나오면 쉽게 포기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저는 전공을 굉장히 좋아해서 전공 수업은 정말 열심히 들었어요.

또 건축학전공의 특성상 한 교수님 당 10명 정도의 학생을 케어해주시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굉장히 높아요. 교수님들도 열정적이시고 학생들도 열정적이라서 학과 생활을 정말 재밌게 했어요. 학과 교수님들과 페이스북 친구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거고, 자주 카카오톡으로 연락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어요. 그래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도 교수님께 허물없이 상담 요청을 해서 극복하기 쉬웠던 것 같고요. 교수님께서 저한테 ‘너는 건축을 계속 해야 해’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진로를 확실시했을 정도로 교수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9. 선배님의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요?

3월에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환경조경학과로 진학할 예정이에요. 제가 배운 것과는 조금 다른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기도 했고, 사실 조경 관련 전공이 우리학교에도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 자리 잡히지 못한 학문이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으로는 박사과정까지 쭉 이어가려고 하고요, 확실히 정한 건 아니지만 연구직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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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지막으로 이화인들과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 친한 후배들에게도 이야기하는데, ‘매듭을 짓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해요. 건축 분야에서는 3년을 채우는 것도 힘들다고들 이야기하는데, 제가 그 3년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매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매번 원대한 꿈을 꾸기보다는 가까이에 완수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마무리하고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은 일이라도 매듭을 지으려고 노력하면 기회가 왔을 때 그 경험들을 꺼내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이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사회 전반에 묘한 뉘앙스나 반감이 있어서 여대 나왔다고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친구들이 있는데, 우리학교 출신이라는 점은 여성으로서나 학교 출신으로서 자부심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내가 이만큼은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자신감의 원천이기도 하고요.

저한테 학교는 힐링이 되는 곳이에요. 주말에 이화사랑에 가서 애들이랑 김밥 먹는 게 에너지가 충전되는 일이거든요. 학교라는 공간을 ‘나에게 기분 좋은 곳, 행복한 곳’으로 남겨 놓는 게 살아가면서 도움이 많이 되는 방법인 것 같아요.


이화투데이 리포터 김다빈(영어영문·14), 김세연(사학·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