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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여성신문 '2015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한국여성변호사회장 이명숙 동문(법학·86년 졸)

  • 등록일2016.04.06
  • 5517

1. 여성신문 선정 ‘2015 올해의 인물’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선배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축하해주셔서 고마워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명숙이라고 해요. 저는 1963년에 태어나서  1982년에 법대에 입학했고, 1987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어요. 1990년부터 지금까지 변호사 일을 하고 있고요. 지금은 우리나라에 여성 변호사가 4,500명이 넘지만, 당시에는 10명이 채 안됐어요. 아무래도 당시 제가 몇 안 되는 여성 변호사이다 보니 법이나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여성단체나 아동단체에서 저에게 도움을 많이 요청했어요. 요청에 응하면서 무료로 상담을 나가고, 법 개정을 하고, 소송을 하고, 강의를 하다 보니 공익이나 인권 쪽 소송을 많이 하게 됐고요.

제가 ‘2015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은 어떠한 업적의 결과물이 아니라 격려와 기대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 1년차에 크게 이룬 업적이 없음에도 노벨평화상을 받았었는데 그 때 미국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크기 때문에 준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야하고, 또 이룰 것이기 때문에 지켜보겠다는 의미라는 것이었어요. 제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 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그동안 함께 일해 왔던 여성 변호사들,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들, NGO단체들, 정부기관 종사자들, 저를 가르쳤던 이화여대 교수님들, 항상 지지해주는 가족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받는 상인 것 같아요. 제가 무엇인가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해달라는 의미인 것 같아서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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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배님께서는 지난 25년간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사건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사건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변호에 헌신하셨고, 2014∼2015년 한국여성 변호사회장을 맡아 여성 법조인들이 전문적인 능력을 사회로 환원하는 데 힘써오셨습니다. 이렇듯 약자의 권리보호에 힘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화여대에서 저에게 무료로 공부를 시켜줬어요. 등록금 전액, 기숙사비, 교재비 모두 지원해줬고, 매월 용돈도 지원해줬어요. 제가 변호사가 돼서 혼자서 잘 먹고 잘 살라고 지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를 통해서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이화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이화여대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받은 것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화여대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제 돈을 내고 공부를 했다면, 인권이나 여성, 아동에 대한 관심이 덜했을 거예요. 이화여대가 저를 키워줬고, 정신을 심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3. 울산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 ‘도가니 사건’으로 불린 광주 인화학교 손해배상 청구소송, 세월호 사건,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인천 11세 여아 아동학대 사건 등 다양한 사건에서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요? 다 기억에 남죠. 어느 하나를 꼽을 수는 없어요. 모든 사건이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요즘 이야기가 많이 되고 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기억나요. 또 어머니가 골프채로 전교 1등을 하는 아들에게 전국 1등을 강요하며 200대 이상 때렸던 사건도 

 있었어요. 아들은 3일 동안 물만 마시면서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하고 거실에 내놓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해야 했어요. 멍해있거나 잠깐 졸면 엎드려서 골프채로 맞았어요. 스무 대를 맞는 것이 한 세트였어요. 그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존속 살인으로 재판을 받아서 제가 항소심을 했었어요.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나 싶어요.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아동학대로 어머니가 구속됐을 사건이잖아요. 그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나를 잠만 자게만 했어도 내가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3년형을 선고 받았어요. 형을 사는 동안 제가 소송을 하면서 1년이 지났고, 다음 2년 동안 생일 때마다 제가 아이의 아버지와 함께 교도소에 찾아가서 아이를 만났어요. 그 아이가 나와서 이번에 모 학교에 수석합격을 했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정말 기쁘고 감사하더라고요.

도가니 사건 같은 경우는, 피해자 아이들이 트라우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도왔어요. 아이들은 대학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트라우마 치료를 받았고, 올해 1월이 마지막 치료였어요. 치료를 받을 때마다 제 사무실에 초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사탕이나 빵도 챙겨주고, 밥도 같이 먹었어요. 아직도 아이들과 연락하면서 안부도 묻고 필요한 것도 사주곤 해요. 어떤 사건이든 시간이 지나면 언론에서 다루지 않게 되면서 잊혀 지는데, 그 때 누군가가 가까이서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힘이 되거든요. 제가 계속 끝까지 관심과 믿음을 가지고 지켜본다는 확신을 주면서 아이들이 나약해지지 않고 힘을 얻어서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라요.

아이들과의 사건이 마음이 아프고 관심이 가고 기억에 많이 남아요. 피해자로서 극심한 공포와 절망에 빠져있던 아이들이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사해요.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이와 나영이의 언니는 나중에 커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영이는 의대, 나영이 언니는 법대로 가서 의사와 변호사가 돼서 약자의 권리보호에 힘쓰겠다고 했는데 정말 자랑스러워요.


4. 여성 법조인의 비율은 법조인 전체에서 25%내외를 차지한다는 통계청의 자료를 보았습니다. 26년간 법조인의 길을 걸어오신 선배님께서 생각하시는 ‘여성 법조인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앞으로 법률시장에서 여성 법조인들이 더욱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변호사가 2만 2천 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여성 변호사들은 그중에 4천 5백 명 정도 돼요. 5분의 1이니까 25% 정도 되네요. 여성 법조인의 강점은 성실함과 섬세함이라고 생각해요. 또, 여성 법조인들은 여성 법조인들 간의 자매애 같은 끈끈한 유대감이 있어서 잘 연대하며 불의에 앞장설 수 있고, 엄마 같은 마음으로 사건 하나에 집중할 뿐 아니라 의뢰인을 세심하게 챙겨 주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일, 가정 양립이 어렵다는 점에서 야기되는 소극성이에요. 여성법조인들이 그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이후에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편들이 많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과 가정의 양립이 정말 힘들어요. 여성들은 직장과 집안일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 법조인들도 결혼하면 아무래도 뒤로 많이 물러나게 되죠. 아직도 가사와 육아에서 여성이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최근에도 후배들에게 일을 추천해줬는데 “애가 고3이라서 올해에는 쉴래요.”라고 하며 거절을 하더라고요. 남편들은 그러지 않잖아요.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가정일이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모임에 소극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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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보여요. 여러 단체나 위원회, 학회같이 활동을 위한 모임이 많은데, 참여가 남자들에 비해 소극적이에요. 여성이 참가하는 모임이 남성들에 비해서 좀 적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다보면 네트워킹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서로 끌어주기가 어렵고, 빠른 정보 습득이 안 되니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여성 법조인들이 남자들처럼 적극적으로 하고,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과 같은 인프라 구축을 하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법체계를 잘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5. 법조인으로 일 하시면서 법조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변호사는 회사원이랑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공익적인 성격이 강해요. 변호사법 1조에 적혀있듯이 변호사의 사명은 ‘인권옹호 및 사회정의 실현’이에요. 그래서 저는 법조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나는 공익의 대변자이다. 우리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자리에 가장 앞장서 있다’는 사명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을 가지면 부정부패나 전관예우 같은 것들이 많이 줄어들 수 있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제도가 판결이나 기소, 수사, 변호로서 바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변호사가 된 후에 NGO 단체들과 함께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성매매 특별법, 성폭력 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입양 특례법,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 아동 복지법, 호주제 폐지 등을 위한 강의, 세미나, 토론을 앞장서서 많이 했어요. 국회에 가서 이런 것들이 법제화될 수 있도록 힘쓰기도 했고요. ‘이것은 아니다, 함께 바꿔나가자’는 생각을 모으고 함께 일하는 것이 법조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6. 선배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법학과에 진학하게 되셨나요?

제 초등학교 때 일기장에도 ‘나는 나중에 법대에 가고 싶다’고 쓰여 있는 걸 봤어요. 저는 이과체질이 아니어서 문과만 생각했는데, 문과 공부 중에서도 법학은 학문의 왕도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왕 공부를 한다면 최고의 학문을 공부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법대를 나온 선배들이 말을 논리적으로 잘해서 더 법학을 배우고 싶었어요. 이화여대에서 4년 장학생에 숙식제공도 해준다고 해서 저는 이화여대 법대에 진학하게 됐어요.

7. 선배님의 이화 재학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시 어떤 학생이셨나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어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초반은 데모하느라 최루탄이 쏟아지는 사회적 변화가 심한 시기였는데, 같이 최루탄 맞으면서 데모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1차, 2차 공부하느라 굉장히 많이 힘들었어요. 자괴감도 들고, 이제 맞는 것인가 하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생각한 게 ‘그래 지금 내가 밖에 나가서 같이 구호를 외치지는 못하지만, 이곳에서 고시 공부를 해서 법조인이 된 이후에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모습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 잠시 참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도서관에 앉아 있었어요. 그 당시에 여덟 명이 고시반 장학생이었는데, 장학생 중에 한 명으로 있으면서 학교에서 정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서 고시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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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화에서 배운 가르침이 선배님의 지금까지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Ewha where change begins. 저를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화의 정신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이화여대였기에 인권에 대해, 그리고 여성과 아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9. 선배님께 ‘이화’란 어떤 의미인가요?

일을 하면서 이화 동문들을 많이 만나는데 다들 정말 열심히 살아요. 말하고 생각하고 일하는 것을 보면 이대만의 품위와 격이 느껴져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작년에 헌법재판소에서 성매매 위헌 공개 변론이 있었어요. 성매매를 처벌해야한다는 입장에서 공개변론을 하던 여성 변호사협회 변호사가 있었는데 정말 압도적으로 잘했어요. 준비도 많이 했고, 논리적이고, 전달력도 뛰어나서 눈에 띄었는데 바로 이화여대 출신이더라고요. 자랑스러웠어요. 이대 출신 동문들이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그 중 법조계에도 굉장히 우수한 동문들이 많아요. 주변에 멘토로 삼을만한 훌륭한 선배들이 많아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이대를 졸업한 것이 항상 뿌듯하고 감사해요. 
 
10. 마지막으로 이화의 후배들과 The Ewha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화인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개척해나갔으면 하시나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소송을 통해서 늘 불행한 사람들을 만나서 여러분은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우선 내가 행복하려면 스스로의 자존감이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저는 자기 자신과 친해지고 자신을 위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항상 내 안의 나와 많은 대화를 하고, 나를 돌아보면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요. 나에게 좋은 것을 보여주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힘들면 쉬게도 해주고 그래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알게 되고,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해지는 것이거든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나만 행복할 순 없다는 거예요. 내가 행복하려면 주변이 행복해야 해요. 내 행복만을 계산해서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보는 안목을 가졌으면 해요. 지금 당장은 손해인 것 같이 보여도 나중에 가서는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들이 있어요. 우리 법인의 이름도 ‘‘나와 우리’가 모두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우리‘예요. 독자 여러분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마음가짐을 갖길 바랍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김나경(국제·13), 문해리(국어교육·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