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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나긋하게 인생을 노래하는 가수, 랄라스윗의 보컬 김현아 동문(사학·06)

  • 등록일2016.03.08
  • 5188

2015년의 마지막 날,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서교동 한 카페로 향했다. 들을 때마다 가슴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소유한 여성 듀오 ‘랄라스윗’의 보컬을 인터뷰하러 가는 길. 이별의 감성을 아련하게 전하는 노래 ‘불꽃놀이’로 최근 우리 곁으로 다시 찾아 온 랄라스윗의 보컬 김현아 동문(사학·06)을 함께 만나보자.


랄라스윗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랄라스윗은 기타 치고 노래하는 저와 건반 치는 또 한 명의 멤버, 이렇게 둘로 이루어져 있고요, 활동한지는 6~7년 정도 됐습니다. 2008년에 MBC 대학가요제 은상을 수상하고 그 이후로 데뷔해 지금까지 7개의 음반을 냈어요.


아무래도 멤버가 둘이다 보니 할 수 있는 음악이 한정되어 있기는 해요. 그런데 둘이라고 해서 기타나 건반만 선보이는 건 피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악기들의 도움을 받아 밴드 스타일의 노래를 많이 만드는 편이에요.


‘랄라스윗’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많이들 궁금해하실 텐데요, 저와 또 다른 멤버 둘이서 인도에 두 달 반정도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인도 간식을 파는 가게이름이 ‘랄라스윗’이었는데, 아무 뜻이 없는 이름을 짓고 싶어서 랄라스윗을 택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가게이름도 아니더라고요. 정말 아무 뜻 없는 이름이에요.(웃음)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공생이 대학가요제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상을 탔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고등학교 때 기타를 배워서 실용음악과에 가고 싶었는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초조해지더라고요. 음악은 다른 대학 다른 과에 가서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시점에는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공부를 했죠. 근데 추억으로 남기려고 했던 음악으로의 길이, 펼쳐보지 못한 꿈으로 계속 미련처럼 남더라고요. 그래서 저와 정말 친한 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하게 된 게 ‘대학가요제’와 ‘유재하 가요제’였어요. 사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어서 이게 저희가 마지막으로 도전할 수 있는 배수의 진 같은 일이었는데, 크게 기대하는 마음은 없이 장난 반으로 지원했었어요.


그래서인지 그 때 수상할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상을 다시 보면 굉장히 어색해요.(웃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리고 가요제에는 워낙 음악 전공하는 친구들이 많이 참가해서, 상을 탈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갔죠. 지금 생각해도 저희가 수상한 게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그 기억만 비어있어요.(웃음)


수상 이후에는 홍대에 있는 클럽들을 찾아 다니면서 오디션 지원을 많이 했고 오디션도 많이 봤어요. 대학가요제에 나갔던 팀이라고 하면 그래도 지원할 때 신뢰를 하니까 그 타이틀 덕분에 편했던 것 같아요.

김현아1


지금껏 발표해온 곡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활동한 연식 치고 곡이 많은 편은 아닌데, 가장 최근에 작업한 곡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번 앨범 타이틀곡 ‘불꽃놀이’가 애착이 가장 많이 가요. 곡의 형식을 송폼(Song Form)이라고 하는데, 이 곡 같은 경우는 송폼도 여러 번 썼고, 가사도 다시 쓰면서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라 유독 애착이 많이 가네요.


노래는 어떤 과정으로 만드시나요?


노래를 만드는 과정은 가수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기는 한데, 저는 두 개를 동시에 하는 스타일이에요. 기타로 코드를 정해놓고 레고 조립하듯이 ‘a,b,c’로 나눠진 파트로 틀을 만들고, 나중에 멜로디를 상세하게 잡는 편이에요. 옛날에는 작곡과 작사를 동시에 했는데 요새는 송폼을 만든 다음에 가사를 입히면서 멜로디를 넣어요. 그래서 한 곡 만드는 데 두 달 정도로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기는 해요.
 
가사를 쓸 때에는 사전을 자주 펴서 봐요. 저는 전자사전을 많이 들고 다니던 시대를 살아서, 자주 단어를 찾아보고 이런 단어를 쓰고 싶다 하면 연관 단어를 많이 참조해요. 예를 들어, 반짝인다는 느낌을 내고 싶으면 ‘반짝이다’를 검색해서 유의어를 쭉 보고 그 단어를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도 보고. 나라마다 같은 말도 다르게 표현하는 게 재미있고 신기해서 그걸 많이 이용해요.


단촐하게 여성 듀오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장점은 무엇인가요?


우선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돈을 나눌 때 깔끔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죠. 그리고 노래를 만들 때 각자 전담해서 만들어요, 같이 만들지 않고요. 이건 네 노래 이건 내 노래 이런 식으로 나눠서 만들기 때문에 크게 불편한 게 없어요.


또 다양한 노래를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멤버가 여러 명인데 악기가 두 개만 들어가는 노래를 할라치면 그 곡에서 쓰이지 않는 악기를 담당하는 멤버의 눈치가 보이는데, 저희는 최소 인원이라서 그런 걱정이 없어요. 저희가 하려는 노래에 더 다양한 악기가 필요할 경우 외부에서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 그런 점이 장점인 것 같아요.


반대로 여성 듀오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밴드 노래를 하는데, 베이스나 드럼, 일렉 기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녹음 할 때 어려운 점이 있긴 해요. 이걸 둘이 해결하긴 어렵고, 좋은 연주자가 주변에 있어야 편해요.


인디 가수로서 팬들과 조금 더 다양하게 소통하셨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팬과의 에피소드가 있나요?


저희는 보통 5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차는 굉장히 작은 회사 스튜디오에서 공연을 해요. 늘 오는 사람들이 오고, 함께 기다리다 보면 친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지나가다 낯익은 분과 마주치면, 그 사람도 저를 아는 것 같고 저도 ‘어? 저 사람 어디에서 봤지?’ 할 정도로 눈에 익죠. 확실히 소극장 공연을 하고 나면 청중과 엄청 친해진 기분이에요. 평소에는 사람들이 제 노래를 어떻게 듣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공연을 하면 그걸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아요. 큰 공연장에서는 조명을 바로 쏘기 때문에 사람이 많아도 하나도 안 보이는데, 소극장은 그렇지 않아요. 가까이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 마이크를 대지 않고 노래할 수도 있고요. 사실 저희도 작년에 처음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너무 좋아서 계속 할 것 같아요. 공연 보는 사람도 색다르고 하는 사람도 색다르더라고요.


이화에서는 어떤 학창시절을 보내셨나요?


수업 시작하면 10분 안에 출석을 ‘ㄱ,ㄴ,ㄷ’순으로 부르는데, 제 이름이 제일 먼저 불렸어요. 저는 인문대생이다 보니까 후문 근처에서 왔다갔다했는데, 인문관 5층에서 수업이 있는 날은 바쁘게 뛰어가고 그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우리학교가 출석을 엄격하게 매기고 그걸 성적에 반영하다 보니까, 출석 한 번으로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지각 몇 번 하면 공부하기 싫잖아요. 어차피 성적 안 나올 것 같으니까.(웃음)


한 번은 지금 제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에서 하는 큰 페스티벌 ‘GMF’가 일요일에 열렸었는데, 그 당시에 제가 일주일에 3일만 수업을 듣도록 시간표를 짰었어요. 그렇다 보니 시험기간이 됐는데, 월요일 하루동안 5개 과목 시험을 봐야 했던 거예요. 아침 8시 20분터 오후 5시까지 시험이었는데 그 전날이 공연이잖아요. 일요일에 공연 마치고 풀 메이크업, 헤어 풀세팅 한 채로 지하철 타고 학교 와서 밤샜던 기억이 있어요. 화장만 지우고 핀 열 몇 개 꽂혀있는 상태로 시험을 봤었네요. 그 당시 성적이 너무 안 나와서 오래 휴학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학기에 수업 들을 때는 더 힘들더라고요.(웃음) 교양도 쉬운 수업이 없었던 것 같아요. 철학 수업 한번 들었다가 너무 힘들어서 근처에도 안 갔던 기억이 나요. 영문과 수업도 엄청 고생하고… 그래도 고생했던 게 다 쌓여서 남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사학전공이라 수업시간에 신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이 수업도 재미있게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학교는 굉장히 열심히 다닐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던 것 같기도 해요. 주변에서는 놀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던데 저는 그건 잘 안됐던 것 같아요.(웃음)


선배님께 ‘음악’이란?


어릴 땐 꿈이었는데 지금은 회사와 엮여 꼭 해야 하는 생계이고, 또 잘하고 싶은 일이에요. 학교 다닐 때 학점 따는 기분으로 하고 있어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도 있고요. 내 마음속에 에이플러스(A+)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김현아2

그리고 선배님께 ‘이화’란?


우리학교 졸업한 분들을 많이 못 보기는 하는데, 어디에 가서 이야기할 때 ‘이화’라는 이름이 전혀 부족한 것이 없는 이름인 것 같아요. 사실 지금 하는 일과 상관 없는 전공이라 마지막 학기에 졸업을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굉장히 잘 다녔다고 생각해요. 등록금을 비싸게 내도 전혀 아쉬움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학교라고 생각해요. 생활환경관에서 학생들 진료해주는 거 아직도 하나요?(웃음) 그것도 다른 학교 학생들은 되게 부러워 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도 그랬고 졸업하고 나서도 그렇고, 자부심을 가지고 이화여대 나왔다고 말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인 것 같아요. 이만큼 잘 돼있는 학교도 드물잖아요. 학생들한테 이렇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노력하는 학교도 많이 없고요. 저 때 교수님들이 아이패드를 지급받아서 학생 사진을 찍어 출석부를 만들려고 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장학금 제도도 잘 마련돼 있는 편인 것 같고요. 무엇보다 학교 역사가 오래 됐다 보니, 그만큼 이분야 저분야에 나가 계신 선배님들이 많은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이화 출신이 저밖에 없어서 좀 아쉽긴 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가 바로 학교 다닐 때였어요. 졸업한 저에게도 자랑스럽고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자랑스러운 학교일거라 생각해요.


가수, 작곡가 등 음악과 관련된 꿈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가요제에 한 번 지원해본 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을 정도로 큰 영향을 준 것을 보면,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제가 사학을 전공해서 기자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사람 인생이 작은 계기로 180도 바뀌더라고요. 근데 그때 음악을 하든 안 하든 크게 후회하고 살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후회가 없어서 진짜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고민 없이 무조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스무 살, 스물한 살 때가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음악 하다 지쳤을 때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그리고 확실히 음악만 전공한 사람들보다는 제가 더 넓게 배워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하는 일과 상관없는 전공을 택한 게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것 같아요. 여러분도 한 번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어디 가요제 같은 곳에 나가서, 그 경험을 짧은 에피소드로 끝낼 수도 있고,아니면 저처럼 업으로 삼을 수도 있고요.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마음껏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이화투데이 리포터 장순영(국어국문·14), 김다빈(영어영문·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