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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전통의 현대화를 실천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 이사장 신연균 동문(사회·74년 졸)

  • 등록일2016.01.27
  • 6048

전통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전통의 현대화와 창조적 계승에 힘쓰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한국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아름지기’가 바로 그들이다. 아름지기는 15년 전 작은 봉사활동으로 시작해 경복궁을 포함한 5대궁의 입간판 기증과 피츠버그대학 ‘배움의 전당’ 내 한국실 ‘명륜당’ 개관이라는 결실을 맺어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는 한국 전통문화의 세계화라는 꽃을 피우고자 하는 재단법인 아름지기!

쌀쌀한 겨울바람이 귓가를 스치던 어느 날, ‘아름지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옥의 멋스러운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아름지기 사옥에서 이사장 신연균 동문(사회‧74년 졸)을 만났다.

1.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2001년 아름지기가 설립됐고, 현재는 이러한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화 및 세계화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데요. 이사장님께서는 한국 전통문화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고, 어떻게 이를 재단설립으로 구체화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세대는 전쟁 직후의 폐허에서 시작해 우리나라가 세계 13위권의 경제대국이 되는 격동의 세월을 겪었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노력했고 많은 것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되돌아보니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이 우리의 문화와 전통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후반부에는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 다음 세대에게 이어줄 우리의 문화를 되찾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2001년에 비로소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뜻이 맞는 몇몇 지인들과 손수 할 수 있는 작은 봉사활동으로 시작했는데, 예상과 달리 굉장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전문가 분들이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재능기부도 해주시고 기획도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나아가 보다 공적인 방식으로, 공익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재단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2. 말씀하셨듯이 아름지기의 활동이 처음에는 소박한 봉사활동으로 시작해 점차 경복궁 등 5대궁의 안내 입간판 기증, 전통문화 강좌나 ‘의식주’를 주제로 한 전시 등 보폭을 넓혀왔는데요, 앞으로 어디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우리 문화를 현재와 내일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한다는 큰 틀은 있지만, 재단의 규모를 키우겠다거나 활동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간의 활동들을 보면 모두 그 시기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일들을 위해 노력한 결과일 뿐입니다. 궁궐의 청소나 도배가 꼭 필요했기 때문에 그 일을 했고, 하다 보니 문화유산 주변의 공공디자인 개선이 필요해 다시 전문가 분들을 모시고 문화재청을 찾아가 협조를 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도 공부를 하고 더 많은 분들과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강좌를 개설한 것이고요. 요즘은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더욱 높여 나가게 하는 일,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 그리고 지역 단위로 일관된 정체성을 갖는 문화유산 주변 환경 개선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3. 홈페이지에서 ‘아름지기는 전통의 일상화를 위해 새로운 의식주 문화를 연구·제안하는 사람들’이라는 문구를 봤습니다.  이 중 ‘전통의 일상화’라는 말이 와 닿는데요, '전통'의 의미가 많이 흐려진 오늘날 전통의 일상화를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다시 정성스럽게 하자는 것입니다. 매해 보도블록 다시 깔지 말고, 안내판 하나, 벤치 하나 아무렇게나 놓지 말자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 우리나라는 살아남기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표 지향적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일상을 무시하고 희생시켰지요. 그런데 일상 속에 제대로 삶과 행복을 담는 것이 바로 ‘문화’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정성과 마음을 담아 자연스럽게 즐길만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잊고 지내던 소소한 일상을 살펴보면 현대에도 유용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한 일상 속에 숨겨진 전통을 다시 다듬고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즐거이 누릴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통’이라며 강조할 필요도 없이 젊은이들과 다음 세대가 아주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 속의 전통이 될 것입니다.

4. 최근 미국 피츠버그대학 내 ‘배움의 전당’ 건물에 한국 전통 양식을 그대로 사용한 ‘한국실’이 성공리에 개관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총괄 아래 진행된 사업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사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앞으로 한국실이 어떻게 활용되기를 바라시는지 등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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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참여 요청을 받은 것은 8년 전이고, 구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한 것은 7년 전입니다. 피츠버그대학은 지난 1930년대부터 Nationality Room Project라는 이름으로 이민사회가 주축이 되는 국가실(Nationality Room) 건립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총 35개의 방이 지정돼 있고, 그 중에서 ‘한국실’은 30번째로 완성된 국가실이죠. 30개의 방을 완성하는 데 80년이 넘게 걸렸으니 나머지 5개가 완성될 때쯤이면 아마도 1세기짜리 프로젝트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피츠버그대학교는 국가실을 설계할 때 해당 국가의 전문가가 디자인을 진행하도록 하는 규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츠버그에 거주하는 교민 분들께서 도움을 줄 전문가를 한국에서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아름지기를 알게 돼 찾아오셨습니다. 여러 국가실과 함께 조성돼 문화교류에 기여하는 측면도 강했고, 무엇보다 1세기를 이어가는 프로젝트의 진정성에 매료돼 기획, 설계, 한국에서의 펀드레이징까지 저희가 진행을 맡게 됐습니다.

국가실의 또 다른 매력은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니라 일반적인 대학 강의실로도 활용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 한국의 이미지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이 관광 명소로도 잘 알려져 있어서, 주말에는 학생회에서 자체적으로 가이드 자원봉사를 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한국실이 많은 학생들과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5. ‘아름지기’는 아름다운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이름이 상당히 예쁘고 의미도 함축적으로 잘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직접 작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직접 작명한 것은 아닙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글 쓰시는 선생님들께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드렸는데, 그 중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께서 몇 개 이름을 지어 보내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아름지기’라는 이름을 본 순간 마음이 편해져오더군요. 자원봉사자 분들께 의견을 여쭈었더니 모두가 좋다고 하셔서 정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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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름지기 재단 이사장으로 15년간 계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지방의 정자나무 주변을 가꾸는 일을 할 때 마을 분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 지역 국회의원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쓴 일, 한옥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고 만든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과 함양 한옥이 북촌 일대의 한옥들과 새로운 한옥 숙박시설들의 모델이 되어 확산된 일, 문화재 주변 공공디자인 개선을 위해 궁궐 안내판 개선사업을 한 후 2~3년 만에 전국의 안내판 디자인이 저희 작업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게 된 일, 혹은 ‘이상의 집’이나 ‘피츠버그 한국실 건립사업’처럼 6년, 7년씩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 완성한 사업들…. 기억에 남는 일들은 너무나 많지만 15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가장 의미 있는 것은 과정 그 자체,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 시간들이 너무나 큰 배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느지막이 자식 하나 더 낳아서 키운다는 각오로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면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인생을 새로 배우듯이 아름지기 재단 일을 하는 동안 정말 많은 마음공부가 됐습니다. 비영리재단이라는 것이 좋은 뜻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돈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공명심을 버려야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위해 싸움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길이 맞는지 항상 고민스럽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돈 버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더 돈 버는 일에 신경을 써야하고, 후원을 받을 때에는 기쁨보다 책임감으로 인한 걱정이 앞섭니다. 사업의 진행을 위해 현실적인 판단력을 잃으면 안 되지만 현실적이기만 해서는 비영리재단을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아….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생각하다가 문득 둘러보니 저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을 하시는 분들도, 전문가나 학자 분들도,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결국에는 다 마찬가지더군요. 거창한 목표나 비전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는 일, 내가 사는 삶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이 결국 기본입니다. 제 정성이 아주 모자라지는 않았는지, 이제는 아름지기라는 15살 어린아이가 사회에서 사람구실을 할 만한 어른으로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7. 이사장님의 이화 재학 시절이 궁금합니다. 당시 이화에서 어떤 학생이셨나요?


(웃음) 저는 잘 놀고 멋 내는 데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행히도 수업은 꼭 챙겼습니다. 최신덕 교수님께서 1학년 때 저희들 수업 못 빠지게 한 명 한 명 불러 엄한 가르침 주신 적이 있는데, 그 덕택에 6년을 잘 배운 것 같습니다.

8. 이화에서 배운 가르침이 이사장님께서 사회에서 활동하는 데 혹은 인생 전반에 걸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인생에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이화여자대학교, 그 중에서도 사회학을 공부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라고 늘 강조해주신 가르침, 다양한 현장 연구(Field Study)를 통해 소외된 사회구성원의 생활을 몸소 경험하게 해주신 가르침이 제 일생에 큰 빛이었습니다.



9.아름지기의 다양한 사업들 중 최근 가장 역점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한국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사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모두가 체감하는 바와 같이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이 국내외적으로 매우 좋아지고 있습니다. 케이팝과 같은 한류의 영향이 크죠. 그러나 저는 항상 불안감을 느낍니다. 한국문화의 정체성,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 전통의 뿌리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한류라는 것도 한 때의 유행으로 지나가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류의 관심이 한식, 한복, 한옥 등 전통문화로 확대되고 있음은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이러한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으며, 이를 해외에 제대로 소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욱 미흡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아름지기가 이러한 부분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 아름지기의 향후 비전이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름지기는 한국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활동 목적을 큰 틀에서 유지합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사업내용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바뀌어 왔습니다. 15년 전 활동을 시작할 때에는 전통문화의 중요성 자체를 알려야 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들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보호하기 위한 사업들이 중심이었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아주 높은 수준의 의, 식, 주 전통문화 분야의 결과물을 하나의 롤 모델로서 선보이는 데 주력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여기에 이제 그 결과물들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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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리고 확산시키  는 방향이 한 가지 더해질 것 같습니다. 최근 고민을 집중하고 있는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이나 지역단위 문화유산 주변 환경 개선 등은 근본적으로 아름지기가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산천과 하나로 어우러져 우리의 DNA에 딱 맞는 고유의 의식주 문화가 지속적으로 꽃 피어나가기를 기대합니다.

11.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고 있을 이화의 후배들 및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화 재학시절에 한 교수님께서 “여러분의 자식은 송아지가 아닙니다.”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는데, 저는 그 말이 머릿속에 꼭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 셋을 키울 때 그 말씀을 되뇌며 교육시켰어요. 이것처럼 교수님들께서 학생들이 이것만큼은 꼭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또는 무심코 말씀하시는 것들이 수업 중에 무수히 많이 지나갈 텐데, 그런 것을 새겨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이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일 때가 다양하게 경험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기입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현장에도 찾아가보고, 책도 많이 읽어 봤으면 합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옛날엔 그랬더라’에 그치지 말고 꼭 실천해나가길 바랍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손 인(전자공‧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