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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도 퇴사하지 않은 회사 최초 여사원' 유한킴벌리 전무 이호경 동문(경영·87년 졸)

  • 등록일2015.11.27
  • 6371

이호경1

“○대리, 몇 개월이에요?”
“5개월이에요.”
“아들? 딸?”
“딸이요.”
“엄마 닮아 예쁘겠네요.”


여성과 가족 친화적인 대표 기업으로 불리는 유한킴벌리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리는 훈훈한 대화이다. 하지만 가정과 일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으로 유명한 유한킴벌리도 처음부터 이러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꾸준한 노력의 결과인 것. 그러한 노력의 시발점이 된 한 여사원이 있었으니, 청첩장이 곧 사직서와도 같았던 시대에 결혼하고도 퇴사하지 않은 회사 최초의 여사원 유한킴벌리 전무 이호경 동문(경영·87년 졸)을 The Ewha가 만나보았다.


1. 먼저, 선배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1983년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1987년 2월에 졸업했습니다. 졸업하기 한 달 전에 유한킴벌리에 입사했고요.


유한킴벌리의 상품이 대부분 여성이 쓰는 것들인데 입사 당시 마케팅 부서에 여직원이 없었어요. 그 때는 사무직은 남성이 맡고, 여성은 사무보조를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거든요. 마케팅 부서에 여직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회사가 우리학교에 여직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나 봐요. 그렇게 학교의 추천으로 유한킴벌리에 입사한 뒤로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일하고 있네요. 유아용품부문에서 24년, 여성용품부문에서 3년, 온라인부문에서 1년 반 정도 일했고, 현재는 가정용품부문에서 일하고 있어요.
 
2. 선배님께서는 1980년대, 여성이 결혼하면 직장을 당연히 그만둬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청첩장은 곧 사직서와도 같았던 그 때에 결혼을 하고도 퇴사하지 않은 회사 최초 여사원이신데요,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나 환경에서 이러한 결정을 하고 행동에 옮기시기까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여성을 사무보조나 경리가 아닌 정식 사원으로 뽑는 것을, 제가 입사하던 당시에 유한킴벌리가 처음으로 시도했었어요. 뽑을 때는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막상 결혼을 하게 되니까, 여직원들이 결혼하면 다들 그만뒀던 시대라 회사에서도 제가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내가 왜 그만둬야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인사총무와 같은 행정담당자들이 예외는 없다면서 제가 결혼하고도 그만두지 않는 선례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때 저를 지지해준 사람들이 당시 마케팅부의 제 상사들이었어요. 직원이 결혼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퇴직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저를 지지해주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감사해요.


3. 많은 이화인들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직장 내 남녀불평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유리천장 등 사회적 지위의 차별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선배님께서는 직장에 다니며 여성으로서 겪은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나요? 또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한국은 단기간에 급변한 사회예요. 요즘 직장 내 남녀불평등 문제, 유리천장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제가 사원이었을 때와는 또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처음부터 겪어보지 않고 미리 깰 수 없는 유리천장이 있다고 기정사실화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도전하지 않고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유리천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남자들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여자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승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많아요. 사회, 결혼, 가정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많죠. 하지만 그만큼 여자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 중 남자들이 신경 쓰는 무언가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편 가르기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과 가정의 양립에 있어서는 관습적으로 남자보다 여자에게 책임이 가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집안일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서 책임지기는 힘들어요. 아이가 아플 때 ‘난 어제 데리고 병원 갔다 왔으니까 이번에는 당신이 다녀와.’ 라고 하는 게 잘 되지 않거든요. 남편하고는 세대가 비슷하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대화가 통할 수도 있지만 결혼은 둘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세대가 다른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의 생각은 다르니까 그런 문제들을 순간순간 극복하면서 슬기롭게 넘어가야하죠. 이런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물론 요즘은 아내와 시부모님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남성사원들의 스트레스도 꽤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문제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모두가 나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러워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때 그 때 상황과 환경에 따라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거예요. 나에게 어떤 상황이 닥칠지, 나의 이런 행동에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할지 등을 백퍼센트 예측할 수는 없어요. 다른 사람의 성향을 나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서 극복해야하는 것 같아요.


4. 얼마 전 선배님께서 회장으로 계시는 유한킴벌리 여성위원회에서 일맘(직장여성) 응원 캠페인의 일환으로 ‘2015 일맘 컨퍼런스’를 성황리에 개최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사·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여성들이 많은데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화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는 회사 1세대예요. 그동안은 저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제 아이들도 다 자랐고 해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어요. 제 다음 세대 후배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가끔 개인적으로 차 마시면서 이야기하다보면,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러던 차에 글로벌 미팅에 가서 미국에는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요즘은 다국적 기업들이 ‘다양성’이라는 아젠다를 중시하는 추세거든요. 조직에 비슷한 조직원들만 있으면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회사가 흔들릴지 모르거든요. 성별다양성, 인종다양성, 업종다양성 등을 추구하면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회사들이 알게 된 거죠. 그래서 한국 내에서도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나라는 현재 가장 절실한 것이 성별다양성이라고 생각했어요. 통계를 내보면 신입사원은 남녀성비가 꽤 맞는데 위로 갈수록 여성이 없어요.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 신입사원들이 일·가정 양립 문제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막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해요. 그래서 작년 1월 설립한 것이 ‘KWIN(Korea Woman Interactive Network)’이에요. 서울 본사와 죽전 R&D 오피스에 있는 200여 명의 여사원을 돕기로 했는데, 이 중  가장 힘든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0-6세 엄마 직원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활동을 시작했죠. ‘일맘 컨퍼런스’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행사로 외부에 우리의 아젠다를 알리기 위한 것이에요. 그 외 내부적인 활동도 많죠. ‘일맘’이라는 용어는 저희가 만든 것인데, 일하는 엄마라는 뜻도 있지만 ‘매일 행복한 워킹맘’이라는 뜻도 있답니다.


스트레스에 매여 있으면 옆이 안보이고 발밑만 보여요. 그런데 스트레스를 누군가가 직접 해결해 줄 수는 없잖아요. 이럴 때는 ‘이런 스트레스를 나 혼자 겪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이렇게 극복했다’, ‘나는 이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되잖아요. 그래서 일맘들을 또래별로 묶어줬죠. 서로 밥 먹고 차 마시는 소모임을 지원해주고 강좌도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줬어요.

이호경2 5. 유한킴벌리는 국내의 대표적인 여성 및 가족 친화 기업으로 꼽힙니다. 여성과 가족을 위한 정책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또 실제 근무환경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유한킴벌리의 여성과 가족을 위한 정책으로는 육아휴직, 시차출퇴근, 스마트오피스 등이 있어요. 시차출퇴근 같은 경우는 근무시간은 주어져있고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거예요. 맞벌이 부부나 사내커플 같은 경우는, 한 사람은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늦게 출근하는 대신 늦게 퇴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일찍 출근하는 대신 일찍 퇴근해서 아이와 놀아주는 식으로 활용하더라고요.

스마트 오피스는 시간에서 벗어나 공간도 유연하게 하는 거예요. 필요시 연락이 되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고, 아웃풋을 가져올 수 있다면 어디에서 일하든지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저희 사원들이 보통 용인, 분당, 군포, 죽전에 많이 살아서 군포와 죽전에 스마트오피스를 세웠어요. 본사로 오려면 출퇴근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스마트오피스에서 일하며 전화회의와 화상회의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죠.


그리고 육아휴직 제도도 있어요. 요즘은 남자 직원들도 육아휴직을 많이들 사용하고요. 이런 부분들이 여성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6. 선배님께서는 이화여대 재학 시절에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것 좋아했고요. 2층에 있는 이화서점에서 군고구마 하나 사서 지나가는 사람들 내려다보며 공상에 빠지는 그런 거 좋아했어요. 공강 시간에 우동 한 그릇 사놓고 친구들이랑 한 시간 동안 수다 떠는 것도 좋아했고요. 우동을 지금도 파나요? 옛날에 그 우동이 굉장히 밍밍했어요. 아마 밖에서 먹었으면 맛이 없었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굉장히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요즘도 가끔 생각나요. 재밌었어요.


졸업하고 나서는 학교에 갈 일이 많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2008년에 굉장히 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천지개벽을 했더라고요.(웃음)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옛날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으로서 가지는 정취와 추억하고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7. 이화에서 배운 가르침이 선배님의 지금까지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이화라는 큰 울타리와 전통, 자부심 그리고 자존감이죠. 이런 부분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화인들이 느끼는 부분일 거예요. 요즘은 남녀공학 많이들 선호한다고 하는데, 이화여대가 남녀공학이 아닌 여대로서 가지는 특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화에서 제가 배운 것은 주도력과 오너십(ownership)이에요. 인생이든, 가치관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나의 오너십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이화에서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다른 학교들 보면 교수님이나 학생이나 남성주도적인 경우가 많아요. 대학도 사회의 축소판이라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요. 궂은일도 남자들이 먼저, 좋은 일도 남자들이 먼저. 이런 생각이 박혀있기 때문에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여성’이라서 손해도 이익도 보는 거예요.


하지만 이화에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잖아요. 다 우리가 해야 하잖아요. 예컨대 연극을 하더라도 아버지, 할아버지와 같은 남자역할도 다 우리 여학생들이 하잖아요.(웃음) 배우뿐만 아니라 무대연출과 같은 부분도 다 여자가 하니까, 우리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기회’와 ‘주도력’을 배웠어요. 대동제 준비할 때도 여자들이 다하잖아요. 무거운 짐도 다 옮기고.(웃음) 그런 부분이 사회에 나와서 어려운 일이나 과제에 부딪혔을 때, 숨고 피하거나 나 대신 누구를 시키는 일 없이 적극적으로 겁내지 않고 부딪히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사회생활에도 당연히 도움이 되고요. 여성이 온실 속 화초가 아니잖아요.


우리 공장에서 제품을 회사로 보내요. 트럭에서 회사 현관에 내린 제품들 옮길 때 남자직원 안 시키거든요. 자기 담당 제품은 자기가 박스도 나르고 다 해요. 기꺼이 하죠. 기계 개조하는 것도 다 하고요. 이런 저력을 이화에서 배운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떤 일에 국면해도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거침없이 내 것으로 만들고 해결하는 거죠.


8. 선배님께 ‘이화’란 어떤 의미인가요?
 
나의 ‘정체성’이에요. 마음의 고향이고요. 가정이나 부모님과 동일 선상에 있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나를 만드는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9. 마지막으로 이화의 후배들과 The Ewha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도력은 ‘다른 사람은 필요 없고 다 내가 할 거야’가 아니라,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혀나가는 것이에요. 그 문제가 아이를 키우는 일이든, 일에 관한 것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요. 어떤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과감하게 변화를 모색하는 것,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니까요. 어떤 일이든 주저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대하세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어디에서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백세시대고 다양성의 사회잖아요. 그러니까 기성세대에서 정한 틀에 얽매여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은 길잖아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좌절하거나 우쭐하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예비된 길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고, 다른 사람과 내가 같지 않다고 확신하면서 긴 호흡으로 살아갔으면 해요.


이화투데이 리포터 김나경(국제·13), 김다빈(영어영문·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