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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세상과 소통하는 배우, 김여진 동문(독어독문·95년 졸)

  • 등록일2015.06.15
  • 7561

김여진1


지난 4월 열렸던 대화채플 강연에서 어느 때보다 진솔한 이야기로 이화인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이가 있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 <박하사탕>부터 드라마 <대장금>, <이산>, <그들이 사는 세상>,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화정>의 ‘김개시’까지. 담백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배우이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소셜테이너. 바로 김여진 동문(독어독문·95년 졸)이다.
화의 후배들에게 망설이지 않고 도전하며 진정한 행복을 찾을 것을 강조했던 김여진 동문의 못 다한 이야기를 The Ewha가 들어보았다. 

일상과 아주 가까운 연기를 하는 담백한 배우, 김여진

다른 사람들이 저를 배우로 평가할 때 약간 건조하다고들 해요. 조금 톤다운 되어 있는 편이죠. 약간은 심심하다고 해야 할까요, 전 그게 배우로서의 제 색깔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연기하고 싶고 그런 연기를 좋아해요. 연기의 진폭이 크지 않더라도 일상에 아주 가깝고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기요. 지금 맡고 있는 <화정>의 ‘김개시’ 캐릭터도 그래요. 현대극과 다르게 사극만의 톤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굉장히 무미건조하죠. 그런 모습으로 음모를 꾸미고 독도 먹이니까 무섭긴 하지만(웃음), 전 그런 담백함이 좋아요.

작품을 고를 때 장르나 주제를 가리진 않아요. 단, 저 스스로가 독자 입장이 돼서 시나리오를 봤을 때 재밌어야 해요. 흥미를 끌어야 해요. 제가 표현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든 제가 상상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해요. 이제껏 했던 배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을 하나 뽑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사실 시간이 지나면 그 인물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게 되는데, 굳이 붙잡아 기억하려 하진 않아요. 그래서 항상 가장 최근에 했던 작품이 가장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제가 하고 있는 ‘김개시’ 역할에 몰입하고 있고요.

우연하게, 그러나 운명처럼 시작된 배우의 길

부모님께서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원래는 이과였는데, 독어독문과에 진학하고 싶어서 문과로 바꿔 지원하게 되었어요. 대학에 와서는 공부하고 싶던 독일 문학과 독일어를 공부할 수 있어 좋았지만, 시험을 보고 학점을 받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흥미가 좀 떨어졌죠(웃음). 대학생 때에는 학생운동, 주로 빈민운동을 했었어요.

연기는 아주 우연히 시작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어요. 4학년 2학기 겨울방학 때,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있을 때, 우연히 한 연극을 보러 갔어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였죠. 태어나 처음 본 연극이었는데, 푹 빠졌어요. 그래서 졸업하기 직전 겨울 방학 때, 방학 동안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 연극의 단원이 되었어요. 포스터 붙이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했어요. 단원이니까 연극을 공짜로 볼 수 있었는데 매일매일 하루 두 번씩 한 달간 총 60번을 보다보니 대본을 다 외우게 됐어요.

그런데 어느 날 주인공 역할의 배우가 나올 수 없게 된 거예요. 공연은 해야 되는데, 갑자기 배우를 구하긴 힘들고… 그 때 제가 대사를 전부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무대에 올라가게 됐어요. 같이 무대에 올라간 배우 분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말도 안 되는 연기였지만(웃음), 관객들이 웃고 몰입하고 열심히 봐준 것에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 정말 고마웠죠. 원래 캐스팅되어 있던 유명배우를 보러 온 건데 초짜 연기자인 나의 연기에 호의를 가지고 봐준 거니까요. 그 이후로 관객들에 대해 겁내지 않고 나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 믿음이 배우로 사는 동안 계속해서 힘이 됐어요. 그 연극을 1년간 하게 됐는데 그것을 계기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됐어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로 시선과 마음을 넓히는 일

김여진2 배우라는 직업은 빛만큼 그림자도 강한 직업이에요. 화려하고 빛나지만 그만큼 혼자 있을 때의 허무함과 외로움도 크죠. 무엇보다 늘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고요. 막 연극을 시작했을 땐 마냥 행복하기만 했는데, 영화로 데뷔하고 드라마로 데뷔하고 점점 알려지니까 조급해지더라고요. 연기를 계속 하는데도, 첫 연극할 때만큼 행복하지 않았어요.

늘 나만의 문제, 가령 ‘남한테 어떻게 보일까’, ‘어떻게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온 정신이 집중돼 있을 땐,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아팠어요. 다른 사람이 날 못 알아본다거나, 대우를 못 받는다거나… 그런 것들에 상처를 받았죠.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기 시작하면 마음이 커져요. 내 문제가 사실 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처음에는 아시아 지역의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아이들을 위한 보호단체에서 활동했고, 나아가 기아 문제, 환경 문제, 평화 전쟁지역 문제에도 조금씩 관심을 갖다가 ‘트위터’를 시작하게 됐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잘 모르고 있었던 분들, 이를테면 홍익대 청소노동자분들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됐죠. 
직접 대화할 수 있으니 그 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었고요. 처음엔 뚜렷하게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을 했던 것 같아요. 친구가 되었고, 응원하게 된 거죠.

지금은 엄마로서의 삶에 매진해서 살고 있어요. 몇 년간 육아에 전념하다보니 트위터를 안하고 있는데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다른 방법으로 다시 뭔가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트위터로 목소리를 낸 건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인 거니까요. 확실한 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통 관심이 나 자신에게만 있을 때 괴롭다는 거예요. 세상으로 눈을 넓히고 마음을 넓혀야 내 문제는 사소해지고, ‘나’라는 사람이 성장할 수 있어요. 첫 시작이 두렵다면 아주 작은 노력들부터 시작해보세요. 만원 씩 기부하는 것이든,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것이든, 좋은 기사를 클릭하게 되는 것이든, 각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어떤 일 있잖아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 삶에 있어 중요한 일이에요.

일단 도전해 자신의 진짜 행복을 찾으세요!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 20대들이 암담한 세대라고 생각해요. 아마 경제적으로도 참 힘들 거예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메뉴판만 보면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하나 시켜보라는 것. 그리고 너무 생각하는 데만 시간을 다 쓰지 말고 일단 저질러보라는 것. 그 안에서 잔뜩 허우적거려보고 그 안에서 실패를 반드시 해봐야 해요.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말이죠. 그리고 연애도 너무 따지지 말고 일단 해보세요(웃음). 사실 하나의 좋은 점만 있으면 되는 거거든요. 사람을 만나보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감정을 겪어봐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연애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될 수 있으면 여러 책을 많이 읽고 일 년에 한두 권이라도 고전을 읽으세요. 천 년을 살아남은 책들이요. 문학, 철학, 역사책들을 읽으며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어요.

조금씩 맛보기만 하고 들키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2~30대를 보내고 나면 아무것도 안 될 수 있어요. 인생이 지루해지면서 늘 다른 사람들하고 비교하고 눈치만 보면서 끝나니까요. 그러니까, 주저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살려면 맛보고 뛰어들고 사랑해야 해요. 그리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남들 눈에 행복해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너무 고민하고 따지지 말고 도전하세요. 공부든, 연애든, 독서든, 수많은 경험들이 여러분을 성장케 할 거예요.

이화투데이 리포터 홍수연(방송영상·13), 최지수(국어국문·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