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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문화재청장 나선화 동문(사학·70년 졸)

  • 등록일2015.03.24
  • 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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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데이트 명소로, 가족 나들이하기 좋은 곳으로 급부상하며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경복궁 야간 관람 프로그램을 알고 있는가. 경복궁의 아름다움 밤의 정취와 그곳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역사를 온 국민과 나누기 위한 취지로 행해지고 있는 이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관리하는 곳, 바로 문화재청이다. 문화재에 대한 끊이지 않는 열정과 사랑으로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30여 년간 봉직한 뒤 현재 문화재청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나선화 동문을 국립고궁박물관 한켠에서 The Ewha가 만나보았다. 



우리 모두 문화재가 소중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은 조금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선배님께서는 문화재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삶의 흔적이자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철학과 사상, 국가의 통치이념들이 중심이 되어 건축물이 만들어지고, 생활의 터전이 형성됩니다. 문화재는 그러한 것들 중에서 현대까지 살아남은 생명이 긴 것이죠. 긴 생명에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 역사의 흔적, 시대정신과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재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하고, 국민들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 또한 합니다.



요즘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어떤 기획의도가 있었는지, 그리고 특별히 신경 쓰시는 점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문화재청에서는 궁과 능을 직접 관리합니다 (원래 시에서 관리하던 숭례문의 경우, 사고 이후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기술과 감각으로 지어진 궁과 능에는 그 당시의 정치이념이 깃들어 있죠. 왕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이끌었는지, 그리고 어떤 정신이 나라를 나아가게 했는지 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를 현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문화재청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경복궁 야간개방입니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중국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우아한 아치의 형태를 이루고 있어 참 아름답죠. 달빛에 비춰졌을 때 더욱 장관을 이루는 이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자 시행된 이 프로그램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복궁 야간개방 입장권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는 30만 명 정도가, 작년에는 약 50만 명이 동시에 접속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더군요. 


역사가 깃들어 있는 문화재인 만큼 보존과 안전 관리에 많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사실 더 많은 분들이 경복궁의 밤 풍경을 감상하셨으면 좋겠지만, 어두운 밤이기에 보존과 안전상의 이유로 인원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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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께서 장(長)으로 계시는 문화재청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문화재청에서는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관리합니다. 여기에는 첫째로, 땅 위에 있는 문화재가 포함이 됩니다. 둘째로, 땅 속에 있는 ‘매장문화재’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셋째로, 바다에 있는 역사의 흔적들도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문화재 외에 무형문화재들도 관리하고 있어요. 문화재청의 관리영역이 굉장히 넓죠?


문화재청에서는 이러한 물리적 관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재에 담겨있는 독립운동정신, 애국정신, 충효사상 등과 같은 국민들의 정서나 철학, 그리고 당대의 뛰어났던 기술들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도 고민합니다. 또 이것들을 어떻게 세계와 공유할 수 있을지도 생각하죠.

사실, 이토록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숭례문 사건 이전까지 문화재청이 국가소속기관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몰랐습니다. 한 때 서구의 것들을 동경하며 전통의 것에 대한 관리와 인식이 부실했던 시절이 있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것을 지키고 또 계승하여 한국의 정체성과 정신을 정립하자는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바쁘답니다.(웃음)



선배님께서는 도자미술사 연구자로서도 명성이 자자하신데요. 다양한 분야 중 특별히 도자기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화여대에 입학한 이후입니다. 1966년도에 이화여대에 입학했고, 2학년 때 한국미술사를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었죠. 졸업 후에 학교에서 일할 것을 제안 받고,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을 도자발굴전문박물관으로 만들어야겠다는 포부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화여대는 도자기연구 기초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거든요. 이후에 많은 도자 연구자들을 모아 공부하면서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어떤 미국인 교수가 찾아와서 옹기를 보여 달라며 궁금한 것들을 질문했는데 제가 옹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는 겁니다. 당시 저는 옹기가 단순히 민속품의 하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름다움이 있는 백자, 청자에만 관심이 있었죠. 도대체 어떤 이유로 옹기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하는 호기심도 갖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옹기는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더군요. 한국 도자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백자, 청자 분청도 아닌 옹기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님께서는 조선백자 가마터나 옹기가마 등 여러 문화재 발굴 작업에 직접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발굴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문화재 연구자, 혹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이 굉장히 풍부한 자료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발굴 작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발견되었다 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 탁본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발굴운도 참 좋았던 것 같고요. 팔당댐에서 최초로 청동 검을 발견했을 때 그 곳을 찾아갔던 것도 우리학교였고, 경상북도에 고구려 벽화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남한 최초의 벽화고분을 발견한 것 역시 우리학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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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작업 자체도 무척 중요한 경험이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대학들과 소통하며 교류한 것 역시 이후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 박물기관이 많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이화여대는 유일한 여성기관이라 ‘낭자군단’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전국 대학 박물관을 리드하는 자리를 이화여대에서 여러 차례 맡기도 했죠. 


전라남도 도기가마터를 조사하러 갔다가 군수님께 허락을 받아 영암군의 도움으로 이화여대가 발굴을 도맡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와 학교가 협력하여 문화기반시설을 만든 것인데, 이처럼 발굴은 박물관 네트워크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선배님께서 사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또 계속해서 이 분야의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사학과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갖고 진학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이화여대 인문대를 강력하게 추천했던 것이 첫 인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사실 학교도 건성으로 다녔죠.(웃음) 그렇지만 독서량이 꽤 많은 편이었고 역사학회의 논문발표에는 꼭 찾아가 발표를 듣곤 했습니다. 무척 재미있더군요. 


그러던 중 본격적으로 발굴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고고학개론 시간에 선생님께서 경주에 발굴을 다녀오신 뒤에 칠판에 그림을 그리시고는 ‘이게 무엇에 쓰이는 것 같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죠. '저게 도대체 뭘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수세식 변기인 것 같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정말 충격이었어요. 수세식 변기는 선진의 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오래 전에 그런 문물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 날 이후 선생님을 찾아가 발굴을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안동지역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발굴활동을 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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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그리고 박물관에서의 30년을 아우르는 ‘이화’에서의 경험이 선배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여성 연구자로 지내면서 당시의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도자기에 대한 전문성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의 커다란 특성으로 꼽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비전이 있었기에 더 많이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분야의 훌륭한 선생님들을 모시고 함께 공부하기도 했고, 박물관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며 30년을 보냈습니다. 긴 시간이었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재미있었어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성향이 있잖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성향 중에는 이화여대에서 지내며 얻은 것들이 많습니다. 분명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는 이화여대가 최고잖아요?(웃음) 저는 30년간 이화에 있으면서 무엇이든 분명하고 투명하게 처리하는 방식을 보고 배웠고, 이후에 이 방식을 계속해서 추구해왔어요. 이러한 시스템은 국가기관에서도 전혀 무리 없이 활용됐어요. 이화여대에서의 경험은 학교 밖에서도, 더 나아가 세계무대에서도 제가 당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참 진취적이고 의타심(依他心)이 없어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늘 스스로 해 내려고 하죠. 누군가 대신 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이것은 제가 이화에서 얻은 것이기도 하고 여러분 역시 이화에서 배울 수 있는, 이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조금 힘들거나 문제가 있으면 ‘내가 이걸 왜 해야 해?’하고 관두려는 면도 있습니다. 때로는 곧장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지켜보고 견디는 자세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돌아서지 않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힘도 능력도 충분히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것들을 더 키워나가길 바랍니다. 소통하고 융합하는 여성의 힘이 이화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화에서 배운 것들을 기억하며 나아가길 바랍니다.


* 출처 : 이화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