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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방송계] 효령상 언론부문 수상,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영문·84년 졸)

  • 등록일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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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 하는 빈틈없는 인용들. 인터뷰 장소로 나서기 전,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의 기사를 읽으면서 깐깐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상상했다. 하지만 작고 아담한 외모, 어머니처럼 포근한 말투는 따듯한 이화 선배의 모습 그 자체였다. 최초 여성 논설위원이자 효령대군의 고결한 정신을 선양하는 데 목적을 둔 제 16회 효령상의 수상자인 김순덕 논설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효령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일종의 보너스를 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하는데, 나도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참 고맙다. 요새 회사 선배, 후배들에게 상 받은 턱으로 밥 사느라고 바쁘다. (웃음)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10여 년째 활동하고 계신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다면? 

 

회사에서 칼럼과 사설을 쓰고 있다. 사설은 회사의 방침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맞춰서 글을 쓰면 되는데, 칼럼은 뭘 써야할지 늘 고민이다.  2002년에 논설위원이 됐는데, 여성 논설위원으로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논설위원인데 여성일뿐이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여성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글을 쓸 시점에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을 글쓰기의 원칙으로 삼는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결정된 주제에 대해 내 의견을 쓴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반대로 내 생각이 맞다고 여겨주면 고맙다(그게 당신들에게도 득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  


비판적인 시각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 

 

나는 항상 후배들에게 ‘왜 그런지’를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한다. ‘왜 그렇지?’하고 의문을 가지면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또 하나는 ‘많이 읽으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일상적인 독서 외에도, 어떤 주제를 던져 놓고 그 주제에 맞는 관련 자료를 찾아 읽는다. 나는 이코노미스트와 뉴욕타임즈, 파이낸셜타임즈는 기본으로 읽는다. 특히 외국 연구자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연구들을 한다. 그러한 연구들이 번역돼서 들어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남들이 접하기 전에 좀 더빨리 그런 자료들을 모으고 활용한다. 그런 점들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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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 

 

올해로 동아일보에 입사한 지 딱 30년 됐다. 입사한 후로 5년은 정말 길었는데, 그 후로는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다. 위기 상황이라고 하면, 젊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중앙일보 이정민 부장을 인터뷰한 것(The Ewha 3월호 참고)을 읽었는데, 사실 그런 친구들이 부럽다. 이정민 기자만 하더라도 정치부 기자가 많지 않을 때 시작을 해서 정치부장으로 인정을 받은 경우다. 사실 나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정치부 같은 부서에 근무한 적이 없다.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했을 때, 여기자들은 무조건 생활부에서 배치됐다. 결혼하고 두 달 만에 소년동아부로 파견됐다. 아마 높은 분들이 내가 결혼했으니 곧 그만둘 것이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내가 결혼을 왜 했을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열 달 만에 동아일보로 돌아오긴 했다. 돌아왔을 땐 정말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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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보람차고 뿌듯했던 때는? 

 

독자들이나 사내에서 칼럼이 좋았다는 평가를 들을 때 좋다. 그것 말고도, 2001년에 미국 뉴욕에 연수를 갔었는데, 그때 9·11테러가 일어났다. 그때만 해도 뉴욕에 특파원이 없었는데 마침 내가 뉴욕에 있었던 터라, 지체 없이 현장으로 달려가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한국에 보냈다. 맨해튼 폐허 속에서 취재를 했던 것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그 덕분에 논설실로 오게 되었다. 

그 외에도 뉴욕에 있으면서 동아닷컴에 뉴욕일기를 연재로 썼는데 그게 굉장히 히트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해주었다. 그 때 참 재미있게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이렇게 자유롭게 써도 먹히겠구나 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듬해에 한국에 귀국해서는 ‘마녀가 더 섹시하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제목이 왜 ‘마녀가 더 섹시하다’냐면, 디즈니월드에 가면 사람들이 퍼레이드를 한다. 왕자나 공주가 나오는 것도 재밌는데, 마녀들이 등장할 때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사실 마녀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물론 욕을 먹지만. 인어공주의 마녀 우슐라는 인어의 지느러미를 사람 다리로 만드는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는가. 백설공주는 낯선 사람을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난쟁이들의 말도 안 듣고 말이다. 그래서 마녀가 더 섹시하다고. 

 

학창시절은 어땠나? 

 

나는 80학번이다. 입학을 하고 5월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학교에서 휴교를 했던 게 생각이 난다.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크리스찬 아카데미라는 학생활동을 했다. 인문대에서 '녹원'이라는 교지를 3년간 출판하기도 했다. 사실 졸업하면 취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채용공고를 보면 ‘군필남’만 시험 볼 수 있었다. 여자들이 시험볼 수 있었던 데가 한정돼 있었다. 처음부터 기자가 될거야라고 도전한 게 아니라 시험봐서 들어갈 수 있는 곳 중에 동아일보가 있었다. 

이화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가르침이 인생에서 어떤 도움이 되었나. 

 

이 질문할 줄 알았다. (웃음) 사실 별로 기자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어떤 사람은 이름도 순하고, 사람도 순하게 생겼는데 글은 독하냐고도 한 적도 있다.  나는 이대에서 페미니즘을 배웠고,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이 인기있던 때였다. 페미니즘을 처음 배운 사람들은 여자도 무조건 일해야 한다, 맞고 사느니 이혼하는 게 낫다는 식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여성학을 좀더 공부하면서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중요한 일을 하려면 작은 정의는 접어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대에서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법, 여성성을 내면화하는 법,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걸 위해서 다른 걸 접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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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요즘 대학생들이라면 관심을 가져야할 게 있다면? 

 

신문을 구독해 읽으면 좋겠다. 동아일보도 좋고 한겨레도 좋다. 많은 대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뉴스를 접하는데, 인터넷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 자극적인 것만 찾아보게 된다. 내게 사는 세상에 대해 폭넓게 알기 위해서는 신문을 읽어야 한다. 신문지를 끝까지 넘기다 보면 혈우병 치료제에 대해 관심이 없더라도 이런 게 있구나 정도는 알게 된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이화인들을 위해 조언 부탁드린다. 

 

공공연한 조언은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것이지만, 정말 복불복인 것 같다. 준비를 많이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준비를 안한다고 안되는 것도 아니다. 너무나 뛰어난 학생들이 많고 온갖 경험을 한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조건 큰 신문사에 들어가려고 애쓰지 말고 작은 신문사, 지방 신문사, 블로그나 인터넷 매체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다. 요새는 이런 곳에서 스카웃해 경제부, 정치부로 보내기도 한다. 붙으려고 열심히 시험만 보러 다니지 말고 어디든 작은 데서라도 일단 시작을 하면 좋겠다.


* 출처 : 이화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