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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방송계] 천개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송재정 작가(신문방송·96년 졸)

  • 등록일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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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한 지 3개월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인앓이’를 하며, ‘나인’이 들려주는 아홉번의 시간여행 이야기를 그리워한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그리고 ‘나인’에 이르기까지 송재정 작가의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는 시청자들을 웃기다가 울리고, 울리다가 웃게 한다. 2013년 상반기 최고의 드라마 ‘나인’의 주역, 송재정 작가(신문방송·96년 졸)를 여의도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나인의 결말에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여러 인터뷰에서 드라마의 결론은 시청자들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언급했음에도, 작가의 생각이 무엇인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신다. 나인의 결말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작가의 생각도 여러 결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운명이 결정론적인 것인가, 아니면 자유 의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철학적 문제다. 운명 결정론자들은 과거에서 선우가 죽었으니까, 마지막회의 에필로그는 꿈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운명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마지막회는 현실이다. 뭐, 어쨌든 드라마는 나이가 든 선우가 형을 구하는 해피엔딩이다.

 

어떻게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나?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코미디 강의시간에 꽁트를 짜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강사분이 내가 짠 꽁트를 보시고는 코미디에 자질이 있다며, SBS 예능국 작가로 발탁했다. 2년 정도 있었는데, 거기서 모든 장르의 예능 프로그램을 해봤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맡은 적도 있는데, 그러다가 시트콤 작가도 하게 됐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쁜우리토요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해외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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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프로그램을 비디오 테잎으로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산가였다. 그런데 그 당시 ‘기쁜우리토요일’ 담당 프로듀서가 1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 있으면서, 미국의 시트콤들을 전부 녹화해와서는, 나에게 그걸 요약해오라는 과제를 줬다. 1년치 분량의 시트콤을 보다보니, 시트콤의 구조나 갈등 전개 상황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김병욱 감독님의 시트콤 제작팀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때 고생한 것들이 큰 자산이 되었다.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

 

방송일을 할 때 시대적 트렌드를 남보다 더 빨리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시청자들이 아직 접하지 못한 장르를 개척하는 것, 내 경우엔, 시트콤이 그랬고, 최근의 타임슬립의 드라마가 그렇다.

 

또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든 문장이 대사로, 구어로 처리된다. 방송작가는 실제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보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적합하다. 실제로 사람들과 싸워보고, 싸울 때는 어떤 욕설이 나오는지도 들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본을 쓰면 현실감 없고 어색한 대사가 되어버린다.

 

드라마 작가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편견이 작가는 감성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감성이 풍부한 젊은 여성들이 드라마 작가를 하겠다며 많이 찾아온다. 이런 친구들은 딱 그 시기에 로맨스물은 잘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나면 로맨스 이외의 새로운 것을 쓸 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30대, 40대가 되어서도 계속 일을 하려면, 로맨스물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논리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개발할 수 있는 무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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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구상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관심있고, 재미있어 하는 것을 쓰려고 한다. ‘인현왕후의 남자’와 ‘나인’에서 타임슬립의 모티브를 활용한 것도 내가 타임슬립 이야기를 보고싶어서였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타임슬립 이야기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비극적이거나, 음울한 타임스립 이야기는 거의 없더라. 그런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없으니, 내가 만들어서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거다.

내가 보고싶어서 쓰는 또하나의 이야기를 기획 중에 있다.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조선시대로 배경을 옮겨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왜 이 이야기를 보고 싶어하는가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이야기를 다시 나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같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반전 이야기, 추리 이야기를 잘 만들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기술적으로 잘한다기보다는 어릴 때 셜록홈즈 시리즈나 다른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것이 주효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관찰력인 것같다. 작가는 아는 만큼 쓸 수 있다. 많이 알기 위해서는 관찰을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는지, 말투는 어떤지, 초조할 때는 어떤 제스추어를 취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해볼 수 있는 훈련은 자신의 엄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매일 보는 가족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의 인생을 객관적에서 관찰하면 새로운 스토리가 나온다. 엄마를 비롯해 주변의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구제적으로 기술하다보면, 다양한 캐릭터 자산을 얻을 것이다.

시트콤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내가 아는 사람들의 본질을 조금씩 과장하고 변형해서 캐릭터를 완성해간다.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하는 이순재 씨, 나문희 씨 캐릭터는 바로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보고 썼다. 물론 캐릭터들이 과장되기는 했지만.(웃음)

 

특별히 아끼거나, 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는지?

 

‘나인’에 등장하는 선우 캐릭터다. 선우(이진욱)는 남자로서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전략없이 힘을 빼고 썼다. 그 전에는 ‘인현왕후의 남자’의 김붕도(지현우)나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윤호(정일우)같은 캐릭터들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려는 의도로 일부러 멋진 대사를 만들어줬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윤호 캐릭터(정일우)는 아이디어 회의를 거치면서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짰다. 이쯤에서 서민정을 도와주고, 미소를 날려준다. 그 다음주에는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또 그 다음주는 서민정을 업고 달리는 씬이 나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반응은 좋은데 작가로서 전략적으로 글을 쓰는 것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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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하면 선우는 관습적인 틀을 쓰지 않고, 쓰여지는 대로 대본을 썼다. 시청자들이 좋아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하는 생각으로 썼는데, 배우가 멋있어서 그런지 시청자들이 좋아해주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시청자들이 좋아해준다는 생각에 작가로서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소중한 캐릭터로 느껴진다.

 

대학시절이 궁금하다.

 

사실 학부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학교 정문 근처에 큰 만화방이 있었는데, 공강시간이면 그 만화방에서 죽치고 않아 만화책을 보거나 노래방으로 친구들과 몰려다니곤 했다. 그 당시에 노래방 열풍이 불었다.(웃음)

 

‘나인’의 과거의 배경이 1992년이다. 내가 대학에 갓 입학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 우리를 일컬어 오렌지족, X세대라고 불렀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부분들에 자유화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행되었고 많은 대학생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경제적으로는 호황기여서, 취업걱정도 하지 않았던 시기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취업 걱정없이 신나게 놀았던 것같다.

 

마지막으로 송재정 작가를 좋아하는 「더이화」 독자들과 이화 후배들에게 조언부탁드린다.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들이 제일 안타깝다. 내가 드라마 작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백 번 바람펴 본 사람이 연애 한 번 안해본 사람보다 낫다’고 말하곤 한다.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안에 갖고 있는 무기가 많아야 하는데, 무기를 많이 갖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백 번의 연애는 백 가지 스토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 많은 경험을 하고, 때로는 실패를 맛보면서 알게되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또 한가지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다양한 계층의 세계를 만나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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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것은 수많은 다수를 모르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시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드라마 작가뿐 아니라 사회에서 무엇을 하든 든든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 출처 : 이화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