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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 (동양화·1981졸) N

  • 등록일20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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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기무사 자리에 들어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MZ들의 ‘힙’한 취미 장소로 급부상하며 SNS ‘핫플’이 됐다. 지난 7월 막을 내린 론 뮤익 전시에 53만 명이 몰리며 역대급 흥행 기록을 세웠다. 관람객의 80%가 20-30대다. 뿐만아니다. 전시장과 교육동에 유아차를 끈 엄마들과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미술관이 문을 열기 1시간 전 시니어들이 모여 동네를 걷고 감상하고 대화한다. 요즘 인기인 ‘미술관 한 걸음’ 프로그램이다. 2022년 10월 취임 후 2년여, 김성희 관장이 이끄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K-pop, K-드라마에 이어 이제는 K-예술의 시대. “관장실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적인 미술관들과 미팅하는 상황”이라는 그의 말처럼, 한국 미술의 위상은 달라졌다. K예술의 담론 형성과 수출 전략을 고민하는 그의 눈빛이 빛났다.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두신 일이 있다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서울, 덕수궁, 청주 4관 체제로 운영되는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이에요. ‘국립’이기 때문에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든 세대에 문턱이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미술관의 문턱을 없애는 일에 가장 몰두했어요. 시설 면에서 장애인과 노약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오히려 풀기 쉬워요. 문제는 콘텐츠의 문턱을 어떻게 낮추냐였죠.


‘모두가 행복한 미술관’을 모토로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는지요.

전시 기획과 타이틀, 작품이 무슨 관계인지 딱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쉬운 언어로 쉽게 풀어주는 게 진짜 실력이죠. 전시는 커뮤니케이션이에요. 작가들이 자기 열정과 모든 것을 쏟아 부어서 전시를 하는 이유는 결국 예술 작품을 통해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거든요.

그 다음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했어요. 미술관에서 교육은 전시만큼 중요해요. 교육 부서를 확장하고, 교육동을 리노베이션했어요. 어린아이부터 시니어까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미술관에서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들과 아이들을 볼 때 정말 뿌듯합니다.


K-예술의 세계화를 위해 MMCA 리서치 펠로우십도 추진하고 계신데요.

예전 같으면 해외에 나가서 문을 두드려도 만날까 말까 하는 테이트 모던, 모마, 메트로폴리탄 같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미팅을 하러 와요. 이건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예요. 올해 12월부터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는 이건희컬렉션 전시가 열리고, 최근에는 미술관에서 김치담그기 행사를 했다고 해요. 우리나라 기업인의 이름을 걸고 컬렉션 전시를 한다는 게 대단한 일이죠. 1970년대 미국에서 세계의 예술가들을 초청해 후원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를 만든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것보다 서구, 그들의 입에서 한국 미술의 가치가 나와야 해요. 한국의 단색화는 ‘코리안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Dansaekhwa’라는 독자적인 단어가 쓰이고 있거든요. 그런 독자적인 어록을 만들려면 그들의 입으로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해외 석학을 초청해 한국에서 6개월 체류하면서 한국 미술을 연구하고 저명한 국제적인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도록 지원하는 게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이에요. 미국 콜럼비아대학 알렉산더 알베로 교수가 12월에 막 입국했습니다. 지금 시기가 정말 좋아요. 누구나 한국을 와보고 싶어 하거든요.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비영리 대안공간인 사루비아다방과 캔파운데이션을 설립하셨습니다.

상업 화랑에 있으면서 느꼈던 좌절감이 있었어요. 상업 화랑은 절대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아요. 작가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잘 팔리지도 않고, 작품 판매가도 낮으니 갤러리 운영이 어렵죠. 그러던 차에 백남준 선생님을 만났고 추천서를 써 주신 덕분에 뉴욕 MoMA에서 인턴십을 하게 됐어요. 뉴욕에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기업에서 후원하는 비영리 대안공간이 있어서 젊은 작가들에게 실험적인 예술을 할 기회가 주어지더군요. 귀국 후 3년간 펀딩을 해서 뜻을 같이하는 몇분들과 함께 1999년에 사루비아다방을 열었어요. 그때 이대 동창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2007년에는 이대 77학번 동기 2명과 공동으로 캔파운데이션을 설립했죠. 레지던시 후원을 받은 작가들이 아트버스를 타고 연평도부터 소록도까지 전국을 다니며 지역 주민들과 예술을 함께 체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동창이신 까사미아 최순희 고문님은 버스를 후원해 주셨어요. 이대 동창들에게 빚을 많이 졌죠.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화에서 학·석·박사를 모두 하셨어요. 세계적인 작가이신 김보희 명예교수의 동생이기도 하시고요.

사실 뼈아픈 스토리가 있어요(웃음). 저는 영문과를 지망했는데 떨어졌어요. 언니한테 동양화를 배웠는데, 이듬해 영문과를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이 나왔지만 그림이 재미있기도 하고 배운 게 아깝기도 해서 동양화과에 가게 됐죠. 막상 가니 저는 이름이 없고, 모두 저를 ‘김보희 동생’으로만 보더군요. 언니의 벽을 넘어야 되나 싶고, 동기들은 또 왜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지. 빠르게 전향해서 다른 길을 갔어요. 마침 이대에 미술사학과가 생겨서 석사를 마쳤고, 상업 화랑과 뉴욕 경험 이후에는 또 조형예술학 박사과정이 생겼어요. 두 과 모두 첫 시작을 함께한 인연이 있네요. 제가 이대 조형예술학 1호 박사예요. 김보희 작가랑은 만나면 지금도 투닥거려요. “구도가 이게 뭐냐, 진부해” 막 이러면서요. 언니는 “남들은 다 좋다는데 너만 그러냐!” 그러고, “나 아니면 누가 이런 말 해주냐!”하면서 제가 언니의 야당 노릇을 하죠. 사실 지금은 김보희 작가가 저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고 있어요. 제 임기동안 미술관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했어요.



이화 학생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뭘 원하는지를 알고 방향을 맞춰가야죠.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조율하는 것, 그게 인생에서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에요. 대학 때 충분히 고민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세요.

특별히 미술 분야 얘기를 하자면, 여성들이 갖고 있는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굉장히 높아요. 큐레이터는 예술가와 소통하고, 동시에 일반 관람객의 시선도 맞춰야 하는 직업이에요. 공감 능력이 필수죠. 그런 부분에서 여성들이 굉장히 뛰어나요. 이화 출신들이 이 분야에 최적화되어 있으니 미술 현장에서 많이 일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