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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시카고예술대학(SAIC) 총장 이지선 동문(섬예 96졸) N

  • 등록일2025.04.09
  • 87

이화 DNA 인터뷰 오늘의 주인공은 미국을 대표하는 명문 예술대학인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SAIC)의 158년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인 총장으로 임명된 이지선 동문(섬예 96졸)입니다. 대학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장이기도 한데요, 새로운 변화의 상징으로 시카고예술대학 구성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있는 이지선 동문님의 스토리, 지금 함께 만나보시죠!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화여자대학교 섬유예술학과 학부(96졸)와 대학원(98졸)을 졸업했습니다. 미국에서 섬유예술가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고, 현재는 시카고예술대학의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Q. 시카고예술대학은 세계적인 명문 예술대학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곳인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시카고예술대학(SAIC)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도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시카고에 자리잡고 있어요. 특히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도 꼽히는 시카고미술관과 함께 운영되는 학교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미국 내에서는 2위, 전 세계 미술대학 중에서는 10위권에 들 만큼 높은 명성과 영향력을 자랑합니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자유롭고 실험적인 예술 교육을 경험하기 위해 SAIC에 모이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전시를 보면, 표현 방식과 주제가 매우 다채롭고 대담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모험적인 아이디어를 선택하는 것이 SAIC 특유의 진취적인 학풍이에요. 한국에서도 시카고예술대학 동문들이 미술, 디자인,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답니다. 제 은사이신 이화여대 섬유예술과 이성순 명예교수님도 SAIC 동문이시고요, SAIC에도 많은 이화인들이 오고 있습니다.

 

Q. 시카고예술대학 이사회는 이지선 동문님을 총장으로 선임하며, “여러 대학에서 쌓은 탄탄한 리더십 경험을 바탕으로 SAIC의 미래를 이끌 적임자”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구성원들을 하나로 모으는 탁월한 역량”을 높이 평가했는데요. 조직에서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요?

그동안 성과가 있었다면 제 개인의 능력이라기 보다, 학교 구성원들이 다 같이 노력한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전임 대학인 오티스(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교무처장으로 있었던 시기는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팬데믹으로 인한 극심한 어려움이 있었고, 동시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며 대학 역시 깊은 고민과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그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구성원 모두에게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이 어떤 변화를 이루고 싶은지, 또 그러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대학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함께 고민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언제나 가장 어려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대학의 아젠다도 현실에 적응하며 미래지향적으로 변모하고 있죠. 지금은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총장으로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학생, 교수, 교직원, 동문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얻은 의견들을 바탕으로 대학의 발전 전략을 함께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Q. 미술작가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주목을 받아오셨습니다. 그동안 작품을 통해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 이삼십 년 동안 제 작업은 끊임없이 변화해왔습니다.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제가 고민해 온 다양한 질문과 감정이 제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었죠. 넓은 의미에서 제 작업의 공통된 주제는 저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입니다. 여성으로서, 워킹맘으로서, 딸로서, 그리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유색인종 1세대 이민자로서 겪는 경험들에 대해서 표현했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가 이화여대에서 전공한 섬유예술과가 자수과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자수과는 여성이 가져야 하는 덕목을 가르치는 학과였겠지만, 한국전쟁 이후 현대미술이 소개되면서 자수를 하나의 기법이나 매체로 삼아 섬유예술로 변화된거죠. 물론 제가 자수를 작품에 이용했던 시기는 그 이전 시기와는 달랐지만, 제 작업도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장르의 역사, 여성의 전통적인 의미의 덕목과 현재 사회가 여성에게 바라는 기대, 또 제 개인이 미국에서 1세대 유색인종 이민자로 살면서 겪는 경험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좌) Label Me Label You (우) Top Ten Books To Read Before You Die  (출처 : www.jiseonleeisbara.com)

Q. 유색인종, 이민 1세대, 여성이라는 3중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와 표현이 이루어진 <Label Me Label You>, 이민자로서 느끼는 언어 장벽을 표현한 <Top 10 Books Before You Die>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에서 위트와 솔직함이 느껴집니다.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는 저를 이민자나 재미교포로 바라보는 시선을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고, 언급 자체를 꺼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내 정체성이 타인의 시선으로 레이블되는 건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유색인종, 이민자, 여성이라는 레이블은 제가 붙이지 않더라도 남이 알아서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요. 이왕 붙은 레이블에 대해서 편하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또 그런 레이블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구글에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권을 검색해서 영어로 읽기 시작했어요. 의미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단어에 검은색 실로 수를 놓아 삭제하고, 아이들이 엄마를 불러서 독서가 중단될 때마다 긴 끈으로 책갈피를 넣었죠. 그러다 보니 책이 덮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워져 버렸어요. <Top 10 Books Before You Die>라는 작품은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솔직하게 속마음을 드러낸 작품이에요. 미국에 산 기간이 길어질수록 물론 영어 실력도 늘었겠지만 제가 원하는 수준까지 충족이 되지 않았고, 영어를 제2언어로 쓰는 사람이라는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겪는 언어의 어려움을 오픈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네요.

 

Q. 미술작가로서 성장하시는 데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분이 있다면 누구실까요?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에 감정적으로 가장 큰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분은 저희 할머니예요. 저희 할머니가 이북 분이신데, 이북에서 내려오실 때 유일하게 가지고 오신 게 십장생 수를 놓아 직접 만드신 수저집이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외아들이자 맏아들이셨는데, 돌이 되었을 때 아들을 낳은 기쁨과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만드신거죠. 사실 제가 미국에 올 때 그 수저집을 가지고 왔는데요, 저 또한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이민자로서 주로 자수나 천을 사용해서 작품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수저집에 깊은 감정적 고리를 느낍니다. 피난을 나오면서 며칠을 굶었는데 그거 하나를 지켰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고, 여성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면서도 그 이후로 낳은 세 딸들, 즉 저의 고모들을 위해서는 수저집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 그런 사실이 모순적이면서도 흥미로웠어요. 저는 작업을 하는 것은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의 생각에서 모순을 찾기도 하고 확신이 생기기도 하고요. 어릴 때의 경험과 기억을 비롯해 어른이 되어서 겪는 다양한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품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Q. 이화여대에서의 학창 시절은 어떠셨는지요?

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이화캠퍼스를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이화를 생각하면 그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화여대 동문이신 어머니의 권유로 저 역시 이화여대에 오게 되었는데, 제 어린시절을 통틀어서 이화여대 섬유예술과에서 학부, 대학원을 다닐 때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제 전공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그때가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평생을 하고 있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은 곳이 이화여대라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 여대의 가장 큰 장점은 성실하고 독립적인 리더십을 길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화에 다니는 동안 자연스레 배우게 된 것들이 지금의 저의 모습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Q. 마지막으로 예술을 꿈꾸는 이화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예술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과 디자인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우리의 환경은 물론,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이용하는 모든 사물과 공간을 디자인하고, 편리하고 풍족하고 또 흥미롭게 만드는 사람들이죠. 제 미래의 동료가 될 분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또 앞으로 세상에 어떤 멋진 영향력을 발휘할지 너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