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검색 열기
통합검색
모바일 메뉴 열기

이화여자대학교

통합검색
nav bar
 
Ewha University

People

예술에 삶을 담는 디자이너, 신지혜 동문 인터뷰

  • 등록일2018.06.05
  • 4626

안녕하세요, 이화인 여러분?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근원적이고 심오한 질문같이 들린다고요?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답은 너무 뻔한가요? 오늘은 이 추상적인 질문과 답에 숨결을 불어 넣어줄 인터뷰를 준비해왔는데요.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계시는 신지혜 동문(회화·판화·03학번)과의 인터뷰, 함께 만나볼까요?

 

신지혜동문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형예술대학 회화·판화과를 졸업한 03학번 신지혜라고 합니다. 저는 그림, 일러스트레이션, 텍스타일 디자인 등 다양한 미술 작업을 하고 있고요, 전업 작가이자 디자이너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Q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과를 중퇴하고 미술학부로 재입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재입학이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사실, 같은 대학을 두 번 다닌 건데 두 학번 모두 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각디자인 전공을 했는데, 21살이 된 후 이 길이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디자인 관련 외부 동아리 등 여러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지식을 얻는 데 희열을 느꼈고, 따라서 학교생활에 소홀해지면서 방황의 시기를 보냈던 거 같아요. 학교가 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느껴서 학교를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마음속에 웅크려있는 걸 표출해내도록 해주는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서양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물론 전과를 할 수도 있었지만, 기초부터 배우고 싶은 학구열과 다시 시작하자는 전환점의 의미로 새로운 입학을 선택했어요. 이를 계기로 저의 성격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Q 예술 활동을 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제 일러스트 작업은 달, 풀잎 등 자연으로부터 시작돼요. 자연을 보며 느껴지는 감성을 예술로 표현하는 거죠. 특히 자연이 내는 소리는 다른 시각으로 들으면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소리, 자연, 빛, 공간, 음악 등 일상의 곳곳에서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재학 중 우순옥 교수님께서 '예술이란 삶 자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습니다. 
 
Q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회화, 일러스트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작년 말에 다시 시작한 회화 작업에서의 애착을 소개하고 싶어요. 첫 번째 작품은 '감정의 시작_과잉'입니다. 저는 주로 색상으로 제 내면을 표현하는데, 이 작품에서 검은 줄들은 저를 이루고 있던 제도나 형식, 틀을 의미합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색들이 있어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신지혜동문  
감정의 시작_과잉


또 다른 작품은 ’당신이 보는 그것‘이라는 회화인데요, 자그마한 상자들이 알록달록하게 있는 그림입니다. 판도라 상자를 표방한 박스들이 입체인지 평면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죠? 경계가 없는, 자유롭고 싶은 제 내면을 표현했어요.
 

신지혜동문 
당신이 보는 그것


서로 표현 방식이 다른 두 작품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이 두 작품에 '제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회화 전에 일러스트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외부에서 요청하는 내용과 그에 따라 정해진 주제가 있었어요. 회화를 다시 시작하며 두 작품이 보여주듯, 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속에 웅크려있던 감정을 드디어 표현한 그림이었어요. 새벽에 쓴 일기 같은 작품을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선보이는 그림이었기에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Q 그림 작업 외에도 가수 앨범 재킷 작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재킷 작업을 하며 경험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우연히 시작하게 된 앨범 작업은 즐거운 경험이 됐습니다. 음악도 여러 장르가 있듯이 뮤지션의 성격도 모두 달랐는데요, 기억나는 세 명의 뮤지션이 있어요.

먼저, '#기로'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정길호 씨입니다. 저에게 자화상과 다름없는 한 그림이 있는데요, 빈센트 반 고흐와 달을 좋아해서 그런 이미지들을 담은 그림입니다. 그 작품을 보고 자신의 음악과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주셨어요. 그분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자화상과도 같은 그 그림을 그릴 때 제가 느꼈던 감정과 똑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아직 길이 보이지 않아 느끼는 답답함, 그럼에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힘을 내고 더욱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거든요. 음악과 그림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신지혜동문 
정길호1


또 다른 분은 <언프리티 랩스타 1>에 출연했던 여성 래퍼 '#타이미(Tymee)'입니다. 저는 보통 멜로디나 소리에 예민한 편인데 가사 하나하나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어요. 처음으로 소리보다 가사에 집중을 해본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코로나'라는 밴드인데요, 그분들의 정규 앨범 작업에 참여하면서 '시집 같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냥 일반 CD가 아니라 '시집'같은 음악을 추구하는 게 와닿았어요. 이렇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걸 음악으로, 이미지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공감하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신지혜동문  
타이미

신지혜동문
코로나


Q 작업을 할 때 선배님께서 특별히 고수하시는 신념이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랜 생각 끝의 아이디어를 딱 그림으로 풀어내는 사람도 있고,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사람도 있어요. 예전엔 전자였지만 지금은 두 방식 다 사용하는 걸 보고 '아, 나에게는 원칙이라는 게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원칙이 없는 원칙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원칙이 생기면 그 원칙 속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원칙이 생기면 없애버리죠.

 

Q 학창 시절, 동문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떠올려 보면 저에게는 수많은 모습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정확한 용어가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YOLO(You Only Live Once) 라이프를 살고자 하는 학생이었던 거 같아요. 저는 학창시절 때 유목민을 동경했고, 그들의 떠돌아다니고 자유로운 삶이 부러웠고 또 저 역시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특히 히피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해서 이대와 홍대 근처의 장인들을 스스로 찾아가서 그들이 한 땀 한 땀 만든 핸드메이드 작품을 사러 다니는 것 역시 즐겼어요. 
또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기도 했어요. 새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직접 해보고 알아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각종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는데, 맛있는 고깃집의 비법을 알고자 그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기억도 나네요. 이런 식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거 같아요. 
 
Q 학부생 때 배운 가장 의미 있는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그 가르침이 선배님께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합니다. 
총 네 개의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첫 번째는 제 대학 첫 수업시간인데요, 우순옥 교수님께서 “너희들 여기 무엇을 하러 왔니?”라는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순옥 교수님은 예술은 삶 그 자체이고 삶 자체가 예술인 사람이 예술가라고 하셨어요. 저는 대학 내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당시에는 말장난 같기도 했는데 방황도 하고 졸업도 하고 나서 보니 그때의 말씀이 이해가 가요. 교수님의 질문과 말씀으로 제가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에 대한 삶의 방향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지적 호기심으로 들어본 '우주와 나'라는 자연과학대학의 물리학 수업이 기억에 남는데요, 다른 대학의 전공 소속의 교수님, 학생들과 같이 호흡을 하고 알지 못하는 분야를 공부하는 분위기가 색달랐습니다. 이질감이 들긴 했지만 그런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계기를 선물해주었던 수업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심리학과 관련된 수업은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제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만나며 심리치료를 받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수업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성문화 연구'라는 수업도 기억에 남네요. 이 수업이 너무 좋아서 학교를 두 번 다닐 때 두 번 모두 들었어요. 아무것도 몰랐던 스무 살 때 성이 단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임을 알게 되었어요.

이러한 수업 들을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고, 내면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우주 안에서 나 자신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젠더가 아닌 섹슈얼적인 측면에서도 당당한 여성이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대학 수업으로 얻게 된 영향력 덕분에 대학 졸업 후 방황하지 않고 주체적인 이화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미래에 새로이 도전해보고 싶은 예술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미술이 아닌 다른 분야로 간다면 연극배우를 해보고 싶어요(웃음). 대학 생활 때 '라임라이트'라는 연합동아리를 잠깐 했었는데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포함해서 여러 일을 하느라 바빠서 활동을 자주 못 했어요. 인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질문들은 저에게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 준답니다. 연극배우가 되어 또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나에게 무수한 질문을 해보고 싶어요. 
 
Q 앞으로 10년 후 어떠한 모습의 예술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미술이라는 단독적 분야뿐 아니라 음악, 미술, 연극 등 전체적 예술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디렉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좋은 영향력이 있다면 세상에 폭넓게 펼치고 이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예술가의 얼굴을 가진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거울을 봤을 때 예술가의 얼굴이 보이면 넌 예술가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이 너무 감명 깊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에도 예술가의 모습이 보이게 나이가 들고 싶어요. 


Q 선배님께 이화의 DNA는 무엇인가요?
처음 입학했을 때 학교의 영어 명칭이 Ewha Women’s University가 아니라 Ewha Womans University인 것이 다소 놀라웠어요. 그리고 Womans의 의미에서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Women이 아닌 ‘Womans’가 저의 이화 DNA인 것 같아요. Womans라는 단어를 통해 내가 단순히 여성이라는 집합체에 속해있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화를 튼튼하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아요. 이를 토대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 역할을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과 태도를 지니게 됐습니다.
 
Q 예술가를 꿈꾸며 노력하는 이화의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가끔 학교에 가보면 학생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후배들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예술과 그림에서 빨리 답을 찾으려 하는 것보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에 대해 24살, 27살 그리고 35살에 내릴 수 있는 답들은 각각 다르거든요.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여유롭게 생각을 하고 버텼으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를 예술로 답하는 신지혜 동문과의 인터뷰, 어떠셨나요? 인터뷰를 통해 리포터들은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주변으로부터, 나로부터 시작되는 예술. 이화인 여러분도 인생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 나간다면, 나중에 거울을 보았을 때 한 명의 예술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요?

 

※ 이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는 신지혜 디자이너가 제공한 이미지로 무단 사용 시 저작권법에 위반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화투데이 리포터 9기 김정은(커뮤니케이션미디어 16), 10기 이수정(국제학부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