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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 최지은 동문 인터뷰

  • 등록일2017.12.28
  • 5520

오늘은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이화인 여러분은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시나요? 아니면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혹은 아이돌을 열심히 응원하고 계시나요? 대중문화에 있어 어떤 소비자이신가요? 마지막으로, 요즘 TV나 영화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지는 않으신가요? 대중문화의 소비자이면서 이를 제공하는 ‘여성’들은 어떤 위치에 놓여있을까요? 리포터는 이러한 의문을 품고, 대중문화 기자로 활동하셨던 최지은 동문(국제사무학·05년 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국제사무학과 05년도 졸업생 최지은입니다. 그 후로 방송작가로 잠깐 일했었고, 대중문화 분야의 기자로 2006년부터 2017년 봄까지 일을 했어요.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쉬면서, 9월에 <괜찮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제가 대중문화 기자로서 기사를 썼던 것들 중에, ‘한국 대중문화 속의 여성 혐오적인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 ‘지난 한 2-3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느꼈던 힘든 점’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 책입니다.


최지은


Q. <텐아시아>, <아이즈> 등 10여 년간 대중문화 기자로서 활동을 해주셨는데요. 최근에는 책 「괜찮지 않습니다」도 출판하셨습니다.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이를 쓰시고자 결심하셨던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신가요?

처음부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일을 7-8년 정도 하고 있을 때에도, 앞으로 어떠한 기자가 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만 느꼈어요. 저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그저 대중문화를 좋아해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재미있고 멋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한다.’에 의미를 두고 지냈었죠. 그러던 중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저는 나름대로 제가 페미니스트인 줄 알았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서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유난스러운 일이 아닌지, 혹은 남들한테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지냈던 것 같아요.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여성은 예능이나 영화에서 많이 배제되어 왔죠. 그런데 기자인 제가 그러한 흐름, 여성이 제외되는 흐름의 문제에 대해 빨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김태훈 씨의 칼럼과 그 이후로 논란이 된 옹○○의 팟캐스트 발언은 현실을 인식하게 해준 큰 계기가 되었죠. 옹○○은 방송활동을 하는 유명한 사람들인데, 팟캐스트에서는 충격적인 수위의 여성비하 발언을 해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이 논란이 있기 직전까지도 이 팀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특집기사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비판적인 관점이라는 것이 부족했던 것을 이때 깨닫게 되었어요. 기자로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열심히’가 좁은 시야에서의 ‘열심히’가 아니었나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사회적으로 대중문화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이 영향을 받은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던 것이죠. 

그 이후로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이와 같은 부분이 어디에 있을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여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고민했어요. 그 예로 ‘아재 파탈’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는데, 이 단어는 나이 든 남성들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동시에, 나이 든 여성들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외모 중심적인 잣대로만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죠. 사실 이 여성들의 다양한 개성과 매력에 대해선 전혀 이야기하지 않거나, 좋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왜 예능에서는 여성들이 배제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어요.

 

Q. 웹 매거진 <아이즈>의 기사들과 「괜찮지 않습니다」를 읽으면서, 현대 사회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하시는 동문님의 통찰력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렇게 세상과 소통하는 관점에 있어서 이화에서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화인들은 학교 밖으로 나오고 나면, ‘이화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선입견 속에서 지내게 돼요. 저는 입학 전부터 이를 느꼈는데, 입시 정보를 교환하는 게시판에서 이대생에 대한 비난을 많이 봤어요. 그런 식의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잣대들을 많이 느끼게 되는데요. 다행히 제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서, 개인으로서는 힘들게 살지는 않았어요. 

이화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를 뚜렷하게 느끼게 된 것은, 작년에 학교에서 있었던 시위 이후인 것 같아요. 제가 페미니스트로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시위 참가자들에게 가해진 부당한 비난도 많았는데, ‘왜 얼굴을 가리는지, 심지어 집단 이기주의이다.’라는 말도 있었고요. 이러한 말에 굴하지 않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여성들만이 모인 집단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해결해 나가는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을 제가 학교를 다닌 동안에도 배우고 체득했었는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음을 이때 느꼈어요.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있어서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눈치를 덜 보는 환경이었는데, 사회에서는 이런 것들을 잊고 있었죠. 그러다 작년 재학생들과 힘을 실어주는 동문들을 보면서, 내가 배운 것들이 이런 모습이었음을 새삼스레 느꼈어요.

이화에서는 ‘성별이라는 잣대’로 평가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있었어요. 이것이 저의 20대와 그 이후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보다 나 혼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어떤 일을 할 때 리더가 되는 것에 있어 눈치를 보거나 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어요.


Q. 재학 중, 기자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동문님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던 일이나 강의가 있으신가요? 

저는 국제사무학과를 전공했는데, 이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언니가 그 과에 재학 중이기도 했고, 부모님이 ‘여기가 비전이 있는 과고, 좋을 것이다.’라고 얘기를 하셨기 때문이었어요. ‘언니가 잘 다니고 있으니까, 나도 그냥 여기에 가야겠다.’라고 전공을 무작정 결정을 해버렸어요. 그러나 전공 수업들과 저의 관심사가 너무 달랐고, 당연히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힘들었죠. 이 과에 적응을 못하니 친구도 없고, 자신감도 하락하고, 학점도 안 좋았어요.

그때 제가 우연히 1학년 교양으로, 국문과 김미현 교수님의 <명작 멸문 읽기와 쓰기> 수업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요. 책이나 영화를 읽고, A4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을 제출하는 수업이었어요. 전공수업을 듣다 보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고 재미도 없었는데, 이 수업에서는 처음으로 제가 쓴 리포트에 대해 칭찬을 받았죠. 이 수업만 열심히 즐겁게 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이 수업의 심화 수업까지 들었어요.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같았는데, ‘무언가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은 다른 것보다 내가 좋아하고, 열심히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구나.’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것 같아요. 이 수업만이 유일한 A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요(웃음).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게 된 계기도 이때 수업을 들었던 것이 중요한 작용을 한 것 같아요.

 

Q.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지식인으로서 성취와 성공에 대한 욕구가 매우 크지만, ‘여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결혼이나 육아, 여성의 ‘성공’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여성에게 결혼을 하는 것, 남자를 만나는 것, 아이를 낳는 것은 모두 인생에 정해져 있는 기본값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자를 만나고, 결혼하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이 모든 것들을 수행하려 하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길을 잃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자를 안 만날 수도, 결혼을 안 할 수도,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이 모든 것이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미달되는 사람이거나, 정상적인 인생을 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본인 스스로 어떤 길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그 길로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으면 해요.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특히 여대 출신들은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거의 경험할 일이 없었는데, 회사에서의 회식의 분위기만 보더라도 ‘아, 젊은 여자라는 것은 사회에서 어떠한 존재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내가 있는 자리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이런 일들을 겪지 않도록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의 삶을 끌고 나아가는 것, 다른 여성들도 이러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내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Q.현재 우리나라의 예능,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 무엇을 보고, 듣고, 소비해야 할지 막막한데요.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에 대해 그에 대한 소비를 줄여야 하는 것이 맞는지, 혹은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현명한 대처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 역시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요. 이 사회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할이 있잖아요. 시청자로서, 소비자로서, 유권자로서,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 시청자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프로그램은 보지 않거나 항의할 수 있을 것이고, 소비자로서는 문제가 되는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예를 들어, 문제가 있었던 연예인 유○○씨가 넷플릭스 프로모션 광고에 나온 적이 있는데, 서비스 해지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 광고가 삭제가 되기도 했죠. 소비자들이 반발함으로써 시정된 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유권자로서, 시민으로서는 공공기관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어떤 부분이 성 평등하지 못하다 혹은 잘못된 발언을 했다’ 등의 민원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죠. 다만, 생활로 바쁜 상황에서 모든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는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2년간 여성들이 드라마에서 폭력적인 행동이나 비하적 대사를 보고 싶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면, 이러한 의견들이 언론에서 다뤄지죠. 특히 올해에는 비교적 여성 중심적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여성가족부가 지원한 드라마 ‘마녀의 법정’의 경우, 기존의 남녀 성 역할을 뒤집은 것 같은 캐릭터, 여성 및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드라마적인 접근을 하는 작품인데요. 이전에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손목을 잡아 대화를 시도하던 모습이 많았다면, 이 작품에서는 여주인공의 몸을 터치하는 것이 아니라, 정중히 앞을 가로막으며 잠깐 멈춰달라고 요청을 취하는 모습이 등장해요. 저는 이러한 것이 보다 바람직한 소통의 방식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변화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죠. 대중문화는 대중의 수요, 요구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최지은


Q. 동문님에게 '이화 DNA'란 무엇인가요? 

여성이 부족하거나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체험하고, 내 안의 그것을 체득시킬 수 있는 것이 이화에서의 경험이고, 이화의 DNA인 것 같아요. ‘여성 스스로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화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봤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스스로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죠.

 

Q. 이화의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또는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나의 영역이나 삶이 침범 당한다고 느껴질 수 있어요. 침범하는 사람이 가족이든, 지인이든, 친구든, 혹은 미래의 배우자이든요. 타인이 나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나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생각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물론 쉬운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그것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결혼, 출산 혹은 진로를 결정하는 것일 수도 있죠. 이에 대해 나만의 고유한, 침범당할 수 없는 영역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그것을 최대한 지키려고 했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은 항상 배려하고, 양보하고, 포기하는 것에 익숙한 것 같아요. 부모님께 미안해서, 못난 딸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변의 말 때문에 임신과 같은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여성의 삶은 너무 빼앗기거나 착취당하기 쉽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지키려는 태도와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또한 현재 우리 사회는 항상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기 힘겨운 곳이라고 생각을 해요.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부당한 일에 즉시 맞서서 바로 잡지 못할 때도 많이 있는데, 그럴 때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개인이 못나고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내가 목소리를 냈었어야 했는데, 나에게 닥치니 정작 말을 못했다’는 자책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물론 반성과 성찰은 필요하지만,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을 자신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과 책임감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많이 벗어던질 수 있다면, 마음을 보다 편안하게 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문님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대중문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문과 불편함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같은 이화인으로서 많은 위로와 응원이 되었던 인터뷰였습니다. 대중문화의 주체적인 소비자로서, 그리고 앞으로 사회에 진출할 많은 이화인들이 이 인터뷰를 보고 더욱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9기 정영주(역사교육‧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