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기획의전부장 오영주(정치외교·86년 졸)
- 등록일2015.03.19
- 4370
'손님은 잠시 머물러도 많은 것을 보고 돌아간다'는 몽골 속담이 있다. 지난 3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53개국 정상들과 유엔 등 4개 국제기구 대표들이 참가했다. 회의는 단 이틀간 개최되었지만, 서울을 방문한 손님들은 한국에 대한 많은 것들을 보고 돌아갔을 것이다. 회의장은 각국 정상들에게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최고의 외교의 장이었다. 행사장의 작은 장식부터 각국 정상들의 자리배치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행사의 기획과 의전에 대해 "Fantastic"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오영주(정치외교학, 86년 졸)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소속 기획의전부장이 있었다.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소회가 어떤가?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가 주최한 정상회의 중 최대 규모로, 1년 전부터 준비기획단이 구성되어 행사를 준비했다. 정상회의 기획부터 행사장 조성, 각국 정상들의 의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살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을 잘 조합해서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생각한다. 여러 정상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잘 치러진 행사라고 말씀해주셔서 외교관으로서 뿌듯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각국을 대표하는 정상들은 특별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한편 우리는 호스트국가로서 무게감을 가지고 절도 있는 의전을 유지해야 했다. 지나치게 친절한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것들 것들을 적절하게 제공하여, 받는 이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국제 회의를 위한 의전인 만큼 행사와 연관되도록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1988년 한국에서 네 번째 여성 외교관이 되셨다. 당시 외교관 사회가 남성 중심 조직이었을 것 같다.
그 당시는 외교관뿐 아니라 다른 직업도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강했다. 그래서 오히려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여성으로 남성 중심의 조직에 들어갈 때 너무 전투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그 속에 섞여있으면서 서서히 고쳐가는 방식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아주 오랜 시간 확립된 문화를 하루 아침에 바꾸려 하다가는 본인 먼저 지쳐버릴 것이다. 같은 동료로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임신을 했을 때도 탑승 거부되기 직전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서 업무를 수행했다. 말이 아닌 일로서 여성이 남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근래에는 여성 외교관이 많이 배출되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조직 내에서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우리 때는 술을 많이 마셔야 했지만, 요새는 같이 빙수도 먹으러 가더라. (웃음)
외교관이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외교관은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다. 우선 외교관이 되면 국익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며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 특히 외교가 중요하다. 북핵 문제 등 외교적으로 풀어내야 할 사안들도 많다.
외교관은 변화하고 도전하는 직업이다. 주기적으로 새 일터에 적응해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때로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할 때도 있다. 나도 일본과 중국 공관에서 근무하면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새로 배웠다.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있다면 매번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은 매력이 아닌 난관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근무를 하더라도 짐을 잘 풀지 않게 된다. 어차피 또 싸야 하니까. (웃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가정의 힘이 컸다.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외교관 생활이 쉽지는 않다. 가족들이 그런 나의 생활을 이해해주고, 지원해주었다. 한편으로는 돌보아야 할 가족들이 있으니까 책임감도 커진다. 끊임없이 나눠주어야 하는 엄마가 된 후에 사회에 대한 이해도도 더 넓어지고, 조직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성숙해진 것 같다. |
또 하나는 외교관으로서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는 점이다. 힘든 면도 있지만 즐기면서 하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찾아 오더라. 2006년에는 여성 최초로 유엔과장을 맡아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즐겁게 일하는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한다, 믿을만하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외교관으로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 있나?
한국인이 유엔을 대표한다는 것이 우리 외교 역사에 엄청난 사건인데 사람들은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반기문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을 때, 마침 내가 유엔과장이었다. 유엔과에 선거 캠프를 차리고 선거 전략을 짜고 반기문 당시 사무총장 후보를 보좌하며 전체 과정의 실무를 담당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 확정되고 취임 선서를 할 때, 유엔의 간부들과 각국 대사들이 마치 알현 받는 것처럼 줄을 서서 악수를 청하더라. 그 장면이 감격스러워서 커튼 뒤에 숨어 울었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하는 데 내가 기여를 했다는 생각을 하니 지금 외교관을 그만둬도 아쉬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외교관으로서도 흔치 않은 엄청난 경험이었다.
현재 개발협력국 심의관으로 가 계신데, 개발협력이란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2010년에 OECD 개발원조위원회(DAG: Development Assistance Group)에 가입했다. ODA(공적개발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ODA를 주는 나라로 입장이 바뀐 전무후무한 사례가 된 것이다. 우리는 독특한 개발 경험을 가진 중견리더국가로서 다른 개도국들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또한 원조를 통해서 우리나라와 해당 국가와의 양자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다양한 개발 경험을 축적해두고 있으면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북한을 더 빨리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개발협력은 또 하나의 외교인 셈이다.
이화여대는 2006년부터 EGPP, Ewha-Koica, EGEP를 통해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교육에 힘쓰고 있다.
바로 그런 일들이 ODA이다. 개발에는 여성이 중요하다. 유엔에서도 여성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개도국을 개발한다. 예를 들면, 빈곤 가계가 자활할 수 있도록 소액을 대출해주는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운영할 때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여성을 교육시켜 직업을 갖게 하고, 돈을 빌려 주어 장사를 하게 하면 여성은 자식을 교육시키고, 남편을 돌본다. 여성을 교육시키고 인재화 시키는 것이 개도국 개발을 가속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화여대에서 개발도상국의 여성 교육에 힘쓰고 있었다는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개발협력국에서도 ODA 관련 일을 하고 있으니, 서로 도와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화의 첫 외무고시 합격자이신데, 당시 큰 화제였을 것 같다.
당시 총장님을 비롯한 많은 교수님들께서 좋아하셨다. 최종 합격을 하고 여기저기서 불러주시고 밥도 사주셔서 나중에는 조금 부담스럽더라. (웃음) 외무고시가 다른 국가고시와 다를 게 없는데, 처음이라는 게 가지는 의미가 컸던 것 같다.
3학년 말에 처음 1차 시험을 통과했다. 기대도 안 했던 터라 깜짝 놀랐다. 1년 후 2차 시험에서 근소한 점수 차로 낙방했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1년을 더 공부했다. 솟을관(고시 기숙사)과 100주년 기념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에만 전념했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온전히 나하고만 있는 시간이었다. 학교 교정을 거닐면서 사유도 많이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좋은 성적으로 2차 시험까지 통과할 수 있었다. 3차 시험인 면접에서는 잘 떨어트리지 않는다고 해서 합격하는 줄 알았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 허탈해서 유학을 가버릴까 생각도 했다. 주위에서 한번 더 도전해보라고 권유해 주어 가까스로 시험을 쳤는데 그때 최종 합격했다.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세상이 끝난 것 같았는데, 못 넘을 것 같은 벽도 넘게 되더라. 좌절을 이겨내면 인생의 깊이도 깊어지는 것 같다.무슨 일이 생기면 ‘외시 3차 시험에서도 떨어져 봤는데, 이 정도쯤이야.’하는 생각을 한다. |
이화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배움 등이 인생 전반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
이화의 교풍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쉽게 느끼기 어렵다. 학창시절의 나도 학교가 나에게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회에 나와서야 여성인재를 키우려는 이화의 바람이 나에게 배어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녀공학을 나온 친구들은 알게 모르게 남성 중심의 사고와 차별에 접질려본 적이 있어서인지 수용적인 면이 있다. 반면에 이화 안에서 우리가 주인이다. 모두 같은 여자들이니 ‘그냥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자라서 사회에 나오니, 훨씬 더 진취적이고 당당하면서도 유연하게 행동한다. 리더십을 염두에 두고 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주체적으로 사고하도록 훈련 받고 리더로서의 자격을 갖추도록 교육받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외교관을 하면서 많은 곳에서 이화 동문을 만날 때는 더욱 이화의 학풍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이화를 나온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이화인들이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세계곳곳에서 이화 동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개최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일을 할 때만 하더라도 여러 유능한 이화 동문들을 만났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인 나승연 동문이 행사기간 동안 장내 안내 방송을 맡았다. 또 손지애 동문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아리랑국제방송이 영어주관방송사로 참여하여 행사의 이모저모를 전 세계로 원활하게 송출할 수 있었다. 정상회의가 진행되면서 각국의 정상들의 발언이 다국어로 통역되는데,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이진영 교수님이 통역 업무를 총괄하셨다. 그 외에도 행사장 곳곳에서 후배 이화인들이 멋지게 활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이화가 큰 역할을 하였다. (웃음)
오영주 동문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이 많다.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 드린다.
꼭 외교관이 아니더라도, 진로를 결정할 때에는 직업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히 영어 실력이 좋으니 외교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외교관이 되었을 때 좋은 점, 어려운 점들을 조사해 보고, 자신의 성향이나 취향에 잘 맞는지 고려해보아야 한다. 외교관이 되기로 결심하였다면 그때부터는 꿈을 이루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조급해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노력하면 어느 순간 행운이 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이 풀리기 마련이다. 나도 시험 공부할 때 합격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다. 그런데 하니까 되더라고. (웃음)
* 출처 : 이화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