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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한경희-김가영, 선·후배 창업 CEO의 만남

  • 등록일2015.03.17
  • 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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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출신 두 창업 CEO가 만났다. 스팀청소기로 주부들을 ‘무릎 걸레질’에서 해방시킨 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대표(불문·82학번)와 대학생 CEO 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 김가영 대표(사회학·05학번)가 바로 그 주인공.

 

조직 안에서 전문성을 키워 기업체 임원으로 활약하는 여성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스스로 사업 아이디어를 착안해 종자돈을 조달하고 기업체를 키워낸 창업주로서의 여성은 여전히 드문 현실에서 두 사람의 활약은 사회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22살의 나이차나 CEO라는 직함이 주는 위화감을 느낄 틈이 없을 만큼 격의 없었던 두 선·후배 CEO를 지난 5월 4일 서울 합정동의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의자에 앉자마자 서로의 사업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내고, 감탄하고, 격려했다. 대화는 1시간가량 이어졌다.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는

이미지 1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6년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스위스 로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무국 직원에 채용됐으며, MBA 과정을 마친 후엔 라디슨 호텔, 콩코드무역회사 등 미국 현지의 호텔·부동산 컨설팅 업계에서 일했다.
1996년 결혼 뒤에는 10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교육부 5급 사무관 특채시험에 합격,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직장과 가정을 함께 책임져야 하는 워킹맘으로 살던 중 ‘스팀청소기’ 아이디어를 착안, 1999년 한영전기(현 한경희생활과학 전신)를 설립해 현재 매출 2000억 원에 이르는 생활가전 전문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08년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발표한 ‘주목할 만한 여성 기업인 50인’ 중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저서로 『청소 안 하는 여자』(랜덤하우스코리아, 2005)가 있다.

 │김가영 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 대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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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현재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2003년 IT 벤처업체 ‘이누스’를 설립, 모바일 문서접수 시스템인 M-apply 및 외국어 학습 시스템 등을 개발해 각종 창업경진대회 및 벤처상을 휩쓸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창업한 ‘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을 6년 만에 종업원 18명에 연 매출 20억 원을 웃도는 건실한 기업으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현재 이누스 C&C 등 3개의 주식회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11년 4월 동아일보가 창간 91주년을 맞아 선정한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포함됐으며, 저서로 『경제를 깨쳐야 공부도 잘해요』(맥스, 200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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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희 대표(이하 한) : (지금 유통하는 농산물이) 유기농이에요? 유통은 어디로 하는 거예요?

 

김가영 대표(이하 김) : 유기농도 있고, 일반 상품도 있어요. 주로 대규모 음식점들을 상대로 공급합니다.

 

한 : 그래요? 처음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내가 지금 들을 말이 너무 많네. (웃음)

 

김 : 아니에요. 선생님이야말로 제가 처음 사업 할 때 롤모델이셨는걸요.

 

한 : 어머! 영광이에요.

김 : 처음에 이화에 와서 궁금했던 게 선배님들이 그렇게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신데, 왜 여성과 관련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의 대표는 다 남자일까, 라는 거였거든요. 그 와중에 알게 된 선생님의 존재가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요. ‘아, 나도 나중에 내 사업을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지난 4월에 동아일보 100인 선정되고 나서 학교 홍보과와 인터뷰하다가 “(선배들 중) 누구랑 제일 만나고 싶냐”고 물으시기에 선생님 얘길 했던 것이고요.

 

 

대학 새내기 시절 창업…발로 뛰어 얻은 초기 고객들

 

한 : 그럼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거네요? 그렇죠?

 

김 :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벤처회사를 하고 있었어요.

 

한 : 어머, 그래요? 이제 보니 나보다 사업 선배인 것 같아.

 

김 : 아니에요. 모바일로 서류 접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친구들이랑 조그마하게 회사를 차렸던 것인데요. 나중에 비슷한 서비스가 큰 회사에서 출시되는 등 불합리한 면을 보고 나서 IT쪽에서는 승산이 없겠다고 생각해 철수했어요. 대신 물건을 생산하는 쪽이 더 정직하고 투명한 면이 있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에 여름 농활을 가게 됐어요. 대학교 1학년 때였죠.

 

거기서 우연히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는 모습을 봤어요. 열심히 일군 채소가 제 값을 받지 못해 농사를 포기하는 거였어요. 가슴이 아파서 소비자와 농민 모두가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거기서 지금 사업 아이템을 얻은 거예요.

 

한 : 대학교 1학년 때 시작했으면 지금 6년째네요? 작년 매출이 얼마나 되나요? 직원 수는?

 

김 : 25억 정도고, 직원은 19명이에요.

 

한 : 농산물로 25억이면 굉장히 많이 했네요. 회사이름은 뭐예요?

 

김 : 회사를 다 나눠놨어요. 제일 큰 회사가 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인데요. 여기서는 상추 한 작물만 해요. 하루에 600상자씩 매일매일 배송해요. 브이에프팩(VFpack)이라고 소포장해서 파는 서비스도 있어요. 그거는 주로 여성분들한테 과일, 채소들을 여러 종류로 작게 넣어서 팔아요. 한 달에 한 번 씩 집으로 배송해드리고 있어요. 농산물 같은 경우엔 재고가 남으면 다 비용이잖아요. 그래서 회원제로 주문 받아서 생산해요. 재고가 없으니까 가격이 좋죠. 머리 아픈 거 싫어해서 재고는 피하려고 해요. 근데 그 회사(VFpack)를 시작한지는 두 달 밖에 안됐어요. 원래는 상추 비투비(B2B) 전문회사였어요.

 

한 : 그러면 다른 회사들도 있잖아요. 그거는요?

 

김 : 그 회사들은 홈페이지 없이 비투비만 하는 회사에요. 제가 처음에 자본이 없으니까요. 그걸로 시드머니(seed money)를 모아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한 : 그러면 비투비는 영업은 어떻게 하셨어요?

 

김 : 대형 음식점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했어요.

 

한 : 어린 친구가 참 대단하네요.

 

국제기구 거친 엘리트 공무원, 창업을 선택한 이유

김 : 저는 선생님이 더 신기해요. 처음부터 사업을 하신 게 아니고, 엘리트 공무원이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미 안정적인 기반이 있고 나서 창업을 결정하시기까지 힘들지 않으셨나요?

 

한 : 김가영님처럼 처음부터 제대로 마음을 먹고 ‘이거 되겠다!’해서 사업을 시작을 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업이라는 게 내가 하겠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사업에 관심은 있었는데 기회가 쉽게 오진 않았어요. 대학교 다닐 때 학교 앞 가게들을 보면서 ‘이 집이 하루 매출이 얼마고, 한 달 매출이 얼마여서, 돈을 얼마를 벌겠다. 얼마를 손해 보겠다. 이게 언제 문 닫겠다’는 식의 장사 계산을 항상 했었던 같아요. 근데 관심만 있었지, 막상 김 대표님처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던 거죠.

 

김 : 선생님은 굳이 장사를 안 해도 다른 능력이 많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사업 외에 다른 재주가 없어서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고요. (웃음) 그러면 선생님 회사는 왜 차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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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우리나라 맞벌이하는 워킹맘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일 텐데요. 가사랑 육아, 직장일 병행하기가 워낙 힘들어요. 특히 전 무릎 꿇고 하는 걸레 청소하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대걸레도 사서 써봤는데 위생관리가 쉽지 않아서 생각한 게 뜨거운 대걸레가 있으면 어떨까? 그 전에 제가 워낙 뜨거운 물로 설거지도 하고, 목욕탕 청소도 하고 그랬거든요. 뜨거우면 일단 위생이 해결되잖아요. 그렇게 간단하게 시작한 것이지 사실 대단한 게 뭐가 있겠어요.

 

김 : 그렇게 착상하시고 난 다음에 처음으로 하신 일이 뭐였어요?

 

한 : 일단은 시장조사를 했죠. 이런 제품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기술적으로 이런 콘셉트의 제품을 만들기가 쉬운지 알아보고요. 내가 공학도가 아니다 보니까 그런 기본적인 조사를 먼저 했죠.     

 

김 :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그 점이 너무 알고 싶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그냥 농산물이 현지가격과 소비자가격이 너무 차이가 나고, 분명히 거기서 먹었을 땐 맛있었는데 서울에 오면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도 맛이 없었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내가 산지에서 직접 가져다가 빠른 시간 내에 팔면 되겠다. 사실은 이게 다였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처럼 큰 회사 하시는 분들은 처음에 더 많은 생각을 가지고 하셨을까? 사실은 그게 참 궁금했어요.

 

작은 회사의 섬세함과 기동력, 회사 키우면서 유지하는 게 관건

 

한 : 김 대표님이 굉장히 큰 잠재력을 가지고 계신 게, 델(DELL)이라는 컴퓨터가 몇 년 만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기업이 됐잖아요? 그게 큰 기업에서 하기 어려운 걸 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게 일종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잖아요? 회사가 커지면 커스터마이징을 기동력을 가지고 하기 힘들어요. 델 같은 경우에는 로지스틱스(logistics), 즉 물류 시스템에 큰 투자를 해서 아무리 물량이 늘어나도 똑같은 속도와 똑같은 효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죠.

 

농산물도 마찬가지인거 같아요. 대부분의 경우에 회사가 커지면 신선도를 유지를 하면서, 그러니까 공급 속도를 유지하면서 소비자한테 직접 배송하는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어떻게 하면 그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지, 큰 기업도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 점을 고민을 해보시면 델 같이 성공적인 회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굉장히 좋은 아이템이에요.
 
김 : 역시 먼저 경험하신 선생님은 다르세요. 제 최대의 고민이 그거거든요. 이게 제가 일일이 다 들여다보고 있는 현재 환경에서는 속도 유지가 가능한데, 앞으로 직원을 계속 늘려나가면 이게 유지가 될지 걱정이거든요.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이렇게 규모에 대한 고민을 하신 시점이 언제인지 궁금했어요.

 

한 : 김 대표님 회사는 우리와는 차이가 많이 있어요. 우리는 가전제품이기 때문에 신선도보다는 유통망을 뚫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아무래도 스팀청소기라 물과 전기가 결합되는 기술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끊임없이 개선하고 제품의 내구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니까요. 약간 고민의 내용이 다르죠.

 

제 생각에는 김 대표님도 회원을 많이 늘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늘릴지, 회원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례해서 내부시스템이 유지가 되는지 그것을 고민하셔야 될 텐데 두 가지 모두 우리보다 어려운 면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엄청나게 재미있고, 도전해볼 만 한 비즈니스를 하시는 건 분명해보여요. 잘 하실 거예요. 

 

김 : 회사 운영이라는 게 어려운 점 한 두 개 해결한다고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선생님은 훨씬 힘드셨죠. 사실 그때는 여자가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희귀하던 시절이었잖아요.

 

“‘바지사장’이죠?” “취업 못한 ‘루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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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제가 처음에 정부지원사업을 신청했더니 정부가 용역을 준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가 평가를 하러 나왔어요. 딱 앉자마자 첫마디가 “당신 남편이 무슨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서 당신이 바지사장으로 나섰는지 실토해라. 내가 사무실 들어가서 남편 주민등록번호만 두들겨 보면 다 나온다.” 이랬어요.

 

여자니까 군대를 안 가서 또래 남자들보다 경력이 3년 더 길고, 5급 사무관 출신인 제가 이런 대접을 받았으니 일반 여성은 어떤 취급을 받았겠어요? 여성 소비자가 절반을 넘고,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제품도 상당히 많은데 평가하는 분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것도 문제가 많다고 느꼈어요. 여성용 제품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남자 분들은 스팀청소기라고 하면 ‘어떤 미친 사람이 진공청소기 두고 스팀청소기를 쓰느냐’는 식이었거든요. 하도 이런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요즘은 여성 담당자들이 꽤 있어요.

 

김 : 저희 같이 뒤에 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해야할 일이네요. 저는 사업하면서 어리다는 것 때문에 더 힘들었지 요즘에는 대놓고 여자가 무슨 사업이냐 그런 말씀 잘 안하시거든요. 전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느껴요. 제가 취업을 안 한 사람이잖아요. 선생님 같은 경우는 워낙 앞에 화려하게 경력이 있으셨던 분이니까 상관없으셨을 텐데, 저는 학생 신분으로 사업을 하다보니까 ‘루저’ 취급이 힘들었어요. 나는 이 사업이 좋아서 하는 건데 ‘할 거 없으니까 이거 하는 거 아니냐?’는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계세요.

 

한 : 대학교 1, 2학년 사장님이면 많이 기특해하고 귀여워해줬을 것 같은데 이상하네요.

 

김 : 맞아요. 그런 부분도 있었어요. 아마 저보다는 지금 한 서른 정도 된 사업하는 언니들이 그런 점에서 힘들어하시죠. 저 같은 경우는 처음에 사업한다고 학점이 1.35까지 내려가서 주변에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은 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는 농산물유통을 해야겠는데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당장은 없으니까 학교를 멀리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회사가 안정되어가면서 학교를 열심히 다니게 됐어요. 학점도 많이 회복했고요.

 

한 : 그러면 현재까지 전체 평점이 얼마나 되요?

 

김 : 3.5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한 : 와, 대단하네. 1.35에서 거기까지 끌어올리려면 거의 'all A' 맞았겠네요.

 

“힘들다고 도망 못 가요” 늘 결단하고 책임지는 CEO의 삶   
 
김 : 노력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사업이랑 학교랑 전혀 관계가 없는 학문인줄 알았는데 회사가 틀을 잡으면서 대학공부가 도움이 되더라고요. 시작할 땐 별로 도움이 안 됐는데 알게 모르게 운영하면서는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전 선생님이 본인의 이름을 앞에 걸고 사업을 한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빵이나 의류 쪽에서는 가끔 보았지만 가전제품에서 이름을 거는 경우는 처음 봤었는데요. 지금도 선생님은 선생님 회사가 선생님 성함이신 거잖아요. 잘 되도, 잘 못 되도, 선생님이 다 책임을 지신다는 의미로 다가왔는데 그게 저에게 위안이 되었어요. 개인으로서는 참 큰 결심이지 않으셨나요? 저도 저희 회사가 ‘김가영의 상추’가 되길 바라게 된 것이 선생님을 알고 나서였어요. 지금도 한 번씩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떠올리고요.

 

한 : 어떨 때 다 접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김 : 가끔씩 오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한참 놀아야 할 나이인데 회사 직원들의 일정에 제가 맞춰야 할 때가 있잖아요. 수금문제나 생산가가 앞뒤가 안 맞을 때 등등 그럴 때마다 다 버리고 놀러가고 싶다고 생각해요. 친구들 배낭여행이나 해외연수 가면 저도 가고 싶고요. 선생님은 안 그러세요?

 

한 :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김 대표님은 그래도 어린 나이에 상대적으로 평탄한 사업을 한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김 : 네. 맞아요. 저는 운이 좋아요. 대체적으로 좋은데 한 번씩 그런 감정이 와요. (웃음)

 

한 : 사실 저 같은 경우는 협력업체까지 1000명 정도를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까 다 접고 도망가고 싶은 충동은 잘 안 느끼게 되요. 책임이 훨씬 크다 보니까 이미 내 인생이 내 인생이 아니죠. 물론 사업을 하면 어려울 때가 많죠. 회사라는 건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항상 위기예요.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 나가야죠. 기업하는 사람의 가장 1차적이고 큰 의무가 자기 직원들에 대한 의무예요. 내가 잘못해서 우리직원들 길바닥에 앉게 되면 그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고.

 

김 : 선생님 말씀 듣다보니 제가 아직 많이 어린 것 같아요. 지난번 동아일보 주선으로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님을 뵈었는데, 그 분도 선생님도 모두 다 CEO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사시는 게 느껴져요. 분명히 어려움이 있으실 텐데 담담하게 아파하신다고 할까요? 윤종용 부회장님이 그러셨어요. 이제껏 한 번도 책임 없이 살아보지 못한 것 같다고. 그걸 너무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20대인 저한테는 기복이 많이 오는데 너무 담담하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뭐라고 대답할 엄두가 안 났어요.

 

한 : 우리 같은 경우에는 김 대표님이 부러운 거야. 젊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다 부러워. (웃음)

 

워킹맘들, 아이들과 소통·교감하는 ‘양질의 시간’ 만들어야     

 

김 : 참 그리고 얼마 전에 알게 된 것인데, 제가 이화 창립100년에 태어났더라고요. 그리고 올해 125년에 24살이 되었어요. (웃음)

 

한 : 85년생이니까 내가 학교 다닐 때였구나.

 

김 : 선생님하고 20년 정도 터울이네요. 선생님 자녀분들은 엄마가 일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한 :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제가 일을 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항상 엄마를 그리워했어요. 제가 사진이나 비디오를 못 찍어주니까 애들 어렸을 때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만화책으로 만들어줬었는데, 보면 엄마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3분의 1은 되는 것 같아. 일하는 엄마로서는 굉장한 부담인건데 이제는 괜찮아요. 전부 남자애들인데 엄마가 있으면 공부해야 되니까 더 괴롭지. (웃음) 아빠는 공부하라고 안하거든요.

 

김 : 창업한 이후랑 창업 전에 고용되어 계셨던 때랑 육아나 결혼생활에 차이가 있나요? 선생님은 둘 다 경험해 보셨으니까.

 

한 : 제 경우는 비슷했던 것 같아요. 공무원도 바빠요. 종합청사에서 일할 때 굉장히 일이 많았었어요. 거의 밤새는 부서도 많고요. 또 창업 초기에는 필요한 인원을 다 뽑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한 사람 역할을 넘어서 사장이 수위부터 경리, 영업까지 다 했죠. 시간은 언제나 부족해요.

 

김 :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좀 나아지나요?

 

한 : 자리를 잡으면 책임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다시 나쁜 엄마가 됩니다. (웃음) 근데 나쁘기만 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게 아이들이 엄마랑 같이 시간을 못 보낸다는 아쉬움만큼이나 자부심을 가져요. 그리고 시간이 양적인 시간과 질적인 시간이 있잖아요. 엄마의 노력에 따라서 질적으로 훨씬 더 시간을 잘 보낼 수도 있어요. 절대적인 시간은 부족해도 있는 시간 안에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그런 시간을 최대로 가지려고 노력하죠.

 

김 : 질적인 시간이라… 앞으로 저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야할 텐데 참 좋은 말씀인 것 같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선생님이 그 자리에 계셔주는 게 정말 위안이 되요. 어려울 때 ‘사업하다 보면 다 그럴 때가 있어’ 이런 말씀 해주시는 선배가 있다는 게 저 뿐 아니라 창업을 꿈꾸는 이화 친구들에게도 큰 힘이 되어 줄 거라고 믿어요. 후배들에게 해 주실 조언 있으세요?

 

“여성 기업인들 경험·노하우 공유할 네트워크 절실해요”   

 

한 : 제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조언을 하겠냐 싶어요. 그냥 한 명의 여성 기업인으로서 생각하는 점은 이제 정말 이화여대가 활동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이화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큰 역할을 많이 했잖아요. 사실 찾아보면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활동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잘 안 보이는 건 육아나 가사랑 일을 병행하다 보니까 사회활동을 할 기회가 없는 거예요.

 

이화가 여성 비즈니스의 가장 큰 기초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게 이런 점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인위적으로라도 학교에서 네트워크를 연결해주시고 장려를 해주시고 그러면 곳곳에 숨어있는 분들이 드러나실 거예요. 특히 CEO 레벨에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게, 바쁜 사람들인 만큼 짧지만 생산적인 모임을 정례화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실 우리 때는 여성이 뭘 한다는 게 어려운 시기였어요. 근데 지금은 각종 고시를 여성들이 휩쓴다고 할 정도로 사회적 입지가 많이 좋아졌고, 여성들의 활동을 많이 장려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저는 우리 이화인들이 비즈니스 분야에서 앞으로 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템만 찾으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어요. 우리 김가영 대표도 남자들이 하는 유통업에 뛰어들어서 잘 하고 계시잖아요. 시스템은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머리로 하는 것이고 실전에 부딪히면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라고 해서 못할 게 없어요. 점점 힘을 쓰는 사업보다는 머리로 하는 사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저는 이화인들이 굉장히 큰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일을 해보면 정말 사회 곳곳에 똑똑한 여성은 거의 이화인들이예요.

 

김 : 저도 항상 놀라요. 앞에 누가 없다는 게 큰 외로움을 주잖아요. 그런 면에서 선생님 같이 훌륭한 선배님들을 많이 둔 이화 동문으로 산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정말 감사하고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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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나도 반갑습니다. 우리 김 대표님도 너무 멋지네요. 개인적으로 우리 회사 영역이 굉장히 넓어요. 여성이 필요로 하는 제품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회사다 보니까 사실은 김 대표님이 하는 식료품 배달 사업에 저도 관심이 많았어요. 지금 농산물 하고 계시니까 나중에 우리랑 같이 할 수도 있겠어요. 앞으로 계속 연락하면서 사업 얘기도 하고 지냅시다.

 

김 : 저야 너무 좋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건강하시고요.

 

한 : 네, 고맙습니다. 우리 김 대표님도 건강하세요.


 

│글·편집 이화여대 홍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