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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2011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라가치상 논픽션부문 대상 김희경 작가(철학·00년 졸)

  • 등록일2015.03.17
  • 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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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마음은 있어. 말이 별로 없는 엄마, 구석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
 (중략)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이나, 대머리 교장 선생님에게도 마음이 있어.”
 -김희경, 『마음의 집』, 창비, 2010 

 

지난 2월 23일 이화여대 김희경 동문(철학·96학번)의 『마음의 집』이 볼로냐 아동도서전의 라가치상 논픽션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어린이책을 대상으로 매년 픽션, 논픽션, 뉴호라이즌, 오페라 프리마 등 4개 분야에서 대상 1권과 우수상 2~3권을 선정하는 라가치상은 ‘아동 출판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그동안 한국 작가들이 다섯 차례 우수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대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음의 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집에 비유해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 낸 책으로, 심사위원단은 ‘한 편의 우아한 시다’ ‘세계 어린이문학의 자랑이자 명예’라며 극찬한 바 있다. “난 기획자, 편집자, 디자이너, 제작자 등 이 책을 만드는 데 기여한 많은 분들의 대변인일 뿐”이라고 말하는 김 동문을 이화 교정에서 만났다.

 

곧 시상식 때문에 출국하셔야겠다. 기분이 어떤가?

올해 도서전 개막이 3월 28일이라서 27일에 이탈리아로 출국한다. 수상소감을 이태리어로 부탁받아서 준비하고 있다. 해마다 볼로냐 도서전에 참석해왔기 때문에 조금씩 이태리어를 배워오긴 했었다.

솔직히 아직도 내 자신이 이렇게 주목 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기쁘고 감사하지만 담담한 마음이다. 마라톤에서 완주하고 금메달 딴 게 아니지 않은가. 시작단계에서 받은 상이라 어리둥절하다. 아직 동화작가로는 데뷔 3년차 신인이다. 상을 안 받았다고 생각하고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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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라가치 상은 책에다 주는 상이다. 책의 텍스트 뿐 아니라 일러스트, 디자인, 편집, 제작 등 전 부문의 조화와 예술성, 완성도를 평가한다. 그래서 출판사에게 큰 명예가 되는 상이기도 하다. 좋은 분들을 만난 게 큰 운이다. 모두가 큰 애착을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함께 받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난 대변인 정도 되는 사람이다.


철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는데 동화 작가는 어떻게 시작했나? 

대학 졸업하고 나서 『미술세계』라는 잡지에서 기자생활을 했었다. 거기서 『어린이 미술세계』라는 잡지도 만들었는데 그 때 어린이, 학부모, 선생님들 대상으로 기사를 쓰다 보니 트레이닝이 됐다. 2003년에는 <우리들의 눈>이라는 시각장애인예술단체에서 맹아들 대상으로 미술수업을 했다. 현재는 리움 미술관 어린이프로그램 기획자로 일하고 있으니 계속 꼬맹이들을 가르쳐 온 샘이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일도 잘 맞는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지만 <우리들의 눈>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단체다. 당시 난 시각장애인용 점자촉각책을 만드는 팀에 있었는데, 그 곳의 팀장님이 처음으로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제안하셨고, 오늘까지 기획자와 작가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어린이책 독립기획자 이지원 씨가 그 분이다. 폴란드에서 미술사 공부를 오래 하신 분인데 덕분에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선생님도 소개받아 『마음의 집』 작업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씨는 어떤 분인가? 

출판계에서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인정받으시는 분이다. 폴란드 작가신데 BIB 황금 사과상(2007), 바르샤바 국제 책 예술상(2003)도 타셨고. 이번에 『마음의 집』으로 한국에선 내가 주목 받았지만 볼로냐에서는 이보나 선생님이 조명을 많이 받으실 거다. 

그동안 책을 30권 넘게 내셨는데 본인이 쓴 글에만 그림을 그리시는 분으로 유명하다. 『마음의 집』 작업은 그야말로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에서 내 글을 잘 소개해 준 기획자 이지원 씨의 공이 크다. 셋이서 파도바라는 작은 도시로 기차여행을 떠났는데,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이지원 씨가 『마음의 집』원고를 폴란드어로 선생님께 읽어드렸다. 이보나 선생님께서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제안하셨다.

 

이미지 『마음의 집』은 어떻게 쓰게 됐는지?

보통 스스로 궁금증이 생겨야 글을 쓴다. 모르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잘 소화시키고, 그 다음부터 쓰는 방식이 약간 정립된 상태다. 말하자면 동화쓰기가 나에게는 일종의 논문인 것 같다. 종종 출판사에서 기획 원고에 대한 청탁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런 작업은 거의 안한다. 

‘마음’의 경우 오랜 관심사였다. 언젠가 신문에서 미국의 어느 대학이 마음의 위치를 연구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마음이 뇌에 있는지, 심장에 있는지. 마음은 영이나 뇌에 있는 정신하고는 또 다르지 않은가? 재밌는 것은 수년에 걸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웃음) 마음이 과연 어떤 것인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마음에 관심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얼굴·옷·헤어스타일을 먼저 보고, 대화하면서 친해져도 마음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감각이 시각에만 지나치게 집중돼 있는 것이다. 점점 스펙터클이 심해지는 느낌이다. 마음이 있는데, 마치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읽어도 울림이 있던데, 아이들은 안 어려워하나? 

미술관에 오는 아이들한테 『마음의 집』을 읽혀보면 반응이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고 한다. (웃음) 경험의 깊이나 내용은 어른과 다르겠지만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 속에서 마음의 집 계단이 ‘친구랑 다투면 10계단. 엄마한테 혼나면 100계단’ 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아이들이라고 힘든 일이 왜 없겠는가. 엄마한테 학원 안 갔다고 꾸중 듣는 것부터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들도 있고, 자기 동생이 태어나서 괴로운 애들도 있다. 어른하고 비교해서 더 작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힘든 건 다 주관적인 거니까.

 

‘대머리 교장선생님에게도 마음이 있다’ 이 부분이 짠하더라 

도입 부분에 말이 없는 엄마나, 혼자 밥 먹는 아빠 등등 모두 마음이 없을 것 같은(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부류들만 다 모아놓은 거였다. 우리 모두 어렸을 때 대머리 교장선생님 한 명 씩은 다 가지고 있지 않나. 다들 그를 어려워하고, 어느 날 비리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들 모두에게 마음이 있다는 거다.

글을 쓸 때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려고 노력한다. 책 속에 나오는 아빠나 엄마나 할머니나 대머리 교장이 모두 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고, 마음의 부엌에서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나 요리가 영 서툰 사람 모두 내 모습의 일부이고. 결국은 모두 내 얘기일 수밖에 없는데 그걸 내 얘기가 아닌 것처럼 쓰는 거다. 모두가 읽어야하니까.       

 

평소 영감을 받는 소스, 문화적 취향이 궁금하다 

음악, 무용, 미술 다 좋아한다. 학부 때도 예체능 과목만 들었다. 창피할 정도로 책은 많이 못 읽었다. 스스로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까 그렇더라. (웃음) 소설가 김연수 씨 작품은 좋아한다. 그는 소설가보다는 에세이스트에 가까운 사람 같다. 픽션을 능숙하게 픽션처럼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잘 쓰니까 좋아한다. 음악은 안 가리고 다 듣는 편인데 요즘은 <10센티>라는 인디 듀오에 빠져있다. 옛날 그룹 중에는 <산울림>을 좋아한다. 

 

동화작가로서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은? 

콜린 톰슨의 『영원히 사는 법』을 추천한다. 밤이 되면 도서관의 책 한 권 한 권이 다 집이 되는 이야기다. 문과 창문이 나타나고, 불이 켜지고, 굴뚝은 연기를 내뿜고, 책장이 별로 한 마을이 이뤄지고. 그렇게 밤이면 살아나는 미로 같은 서가에서 피터가 사라진 책 ‘영원히 사는 법’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았는데 재미있고 그림도 좋다. 이 외에 『마음의 집』 그려주신 이보나 선생님, 피터 시스의 책도 모두 좋다.

 

이화에서 학부-대학원까지 꽤 긴 시간을 공부했는데 

난 정말 이화가 날 키웠다고 생각한다. 오래 다니기도 했고. 캠퍼스 산책을 많이 했었다. 팔복동산, 기숙사 길, 공대 가는 길까지 학교가 정말 넓지 않나. 만날 꽃 보러 돌아다니고 나무 보러 돌아다니고. 서울 시내에서 이런 캠퍼스를 가진 학교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이화의 꽃과 나무,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철학과 공부는 지나고 나서 더 많은 과목을 들어둘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화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던 건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람 가운데 하나다. 현재 나에게 보통 좋은 공연, 좋은 책을 권해주고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은 대부분 대학원 친구들이다. 졸업 이후에도 읽기모임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데 모두 미술을 너무 좋아하고 예술 계통에 종사하고 있다. 함께 전시도 보러가고, 돈 모아서 외국에 있는 미술관이나 비엔날레도 함께 다닌다. 지도교수님이신 윤난지 선생님을 주축으로 선후배 동기들과 졸업 이후에도 계속 만나는 거다. 좋은 아티클을 발굴해서 함께 번역도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 총 3권의 책이 나왔다. 

앞으로 계획은? 

2009년 『지도는 언제나 말을 해』로 데뷔하면서 기획자 이지원 씨에게 얘기했던 게 1년에 책 한 권씩만 내면 소원이 없겠다는 거였다. 다행히 2010년 『마음의 집』이 나왔고, 올해는 『열두 마리의 새』라는 점자촉각책이 창비에서 나올 것 예정이다. 

보통 책 한권이 나오기까지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내년, 내후년에 책을 내려면 지금부터 뭔가를 쓰고 있어야한다. 미술관 어린이프로그램 기획자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글도 열심히 쓰고, 생각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난 1월 1일부터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김연수 작가의 신작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 

‘럭셔리’한 삶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한 정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명품 가방을 든다고 삶이 ‘럭셔리’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진정한 사치(럭셔리)는 성적을 올려주거나 성공을 하는 데 도움 안 되는, 남들이 다 쓸모없다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를 읽거나, 그림을 보는 것이 우리 삶을 럭셔리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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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의식적으로 럭셔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루 하나씩 쓸데없는 일을 찾아서 한다. 오늘도 내가 럭셔리하게 살았나, 안 살았나를 체크해보면서 일기 쓰는 게 내 중요한 일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글·편집 이화여대 홍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