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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이화 동문 변리사 선·후배의 만남

  • 등록일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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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김민정 변리사 (이하 김 변리사) 인경 씨 몇 학번이에요. 06학번? 왜 이렇게 일찍 합격한 거예요. (웃음) 토익도 만점이라면서요? 졸업도 1년이나 남아있고. 좋겠어요. 축하해요. 똘똘한 후배를 알게 돼서 기뻐요. 

후배 최인경 변리사 (이하 최 변리사) 아녜요. 저야말로 같은 과 출신에다 제가 갈 길을 13년이나 앞서 사신 선배님을 만났다는 게 정말 좋아요. 저도 선배님처럼 일과 육아, 유학공부까지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데요. 오늘 많은 이야기 듣고 싶어요. 선배님은 왜 변리사를 선택하셨어요?

 

 

‘전문직 연봉 1위’?…중요한 건 변리사에 어울리는 적성과 인생관  

김 변리사 전 대학 입학할 때부터 현실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학문보다는 스스로 돈을 벌어서 생활을 운영하는 직업 선택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막연하게 변리사가 괜찮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맘을 확고하게 먹은 건 3학년 때 변리사 합격하신 선배님들이 학교에 와서 강연했을 때였죠. 당시 제 마음을 빼앗은 변리사의 매력은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는 점? (웃음) 농담이고요.

 한 때 전문직 수입 1위에 변리사가 올라서 화제가 됐었는데 어느 정도 왜곡된 정보라고 생각해요. 주로 기업을 상대로 일을 하다 보니 소득이 워낙 투명하게 책정되고, 여러 명이 함께 한 일이 한 명의 대표 변리사의 소득으로 계상되는 관행도 있어요. 물론 전문 자격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일반 직장인보다는 높은 수입이 보장되지만 소득 1위는 과장됐으니 그거 보고 변리사 공부 시작하진 말라고 하고 싶어요. 제일 중요한 건 적성, 삶의 목표, 가치관 같은 걸 거예요.

최 변리사 저도 수습기간에 그런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정말 소득 1위는 환상이라고. (웃음) 전 원래 전공공부를 너무 좋아해서 대학원에 가려고 했었거든요. 그러다 1학년 때 연구실 인턴으로 한 달 근무해보니 적성에 너무 안 맞는 거예요. 혼자 엉덩이를 붙이 앉아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일이 정적으로 느껴졌고요. 저도 선배님처럼 3학년 때 학교에서 최연소로 변리사 붙은 선배님 강연 듣고 괜찮은 직업 같아서 공부를 시작한 경우에요. 현재 어떤 일을 맡고 계세요? 

김 변리사 현재 저희 회사 고객인 삼성전자의 바이오산업 출원 쪽을 제가 담당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황우석 교수님 줄기세포 관련 특허 건도 담당을 했었고요. 주로 대기업이나 국책연구소의 연구자들, 대기업 지적재산파트에서 일하는 직원들, 대학교 교수님들 이런 분들과 일을 하죠. 기술연구를 직접 하시는 분들이나 그것을 관리해주시는 분들. 

최 변리사 일하면서 어떤 점이 제일 힘드신가요? 

김 변리사 일 자체가 어려운 건 없어요. 아직은 실질적으로 비즈니스를 하거나 사람을 만나서 고객을 끌어오는 일을 하는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다만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으니까 많이 바빠요. 주말에도 일을 집에서 조금씩 하고, 밤에도 가서 애들 재워놓고 하기도 해요. 앞으로 회사에서 일정한 수익을 나눠 갖는 시니어 파트너가 되려면 고객을 발굴하고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회사 일에 가정에 워낙 바쁘게 일정이 돌아가니까 추가적인 자기계발을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죠.

최 변리사 변리사에 대한 수요는 정해져 있잖아요. 그런데 모든 변리사가 자기 고객을 만들 수가 있는 건지. 고객을 개발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안 와 닿아요. 

김 변리사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울 수가 있어요. 예를 들면 기업이 일을 맡겨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아까운 기술들이 사장되는 걸 찾아내서 그것을 특허 출원해서 권리화시켜 주는 거죠. 그러면 없어질 뻔 한 기술이 살아나고 변리사도 일이 늘어나고요. 또 특허출원을 하는 업무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컨설팅을 해 줄 수도 있고. 회사가 막 시작하는 단계에 참여할 수도 있고요. 업무 영역이야 다양하니까 변리사가 많이 뽑혀도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적극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 해야죠.

 

 

내 담당 특허가 작은 회사를 번창시켰을 때 큰 보람 

최 변리사 남편 분도 변리사라고 들었어요. 좋을 것 같아요. 

김 변리사 글쎄요. (웃음) 장단점이 있어요. 저흰 대학 때 만나 오래 연애하고 결혼했는데요. 제가 먼저 변리사에 합격하고, 남편이 이어서 공부해서 합격했죠. 서로 하는 일을 너무 잘 아니까 편해요. 모르는 거 있을 때 조언도 구하고요. 단점이라면 신비감이 없다는 것? 아무리 부부지만 서로 멋있게 보이고 싶잖아요. 누군가 야근하고 새벽 1시에 들어오면 “우리 ○○이 힘든 일 하느라 정말 고생했어.”이래야 되는데 “늦었네. 11시 정도면 끝낼 수 있었잖아?” 이러니 생색을 낼 수가 없는 거예요. 실상을 워낙 훤하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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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변리사 가장 보람 있을 때는요? 

김 변리사 내가 맡은 특허가 잘 돼서 고객 회사가 번창하게 됐을 때죠. 보통 대기업 고객보다는 중소기업들의 출원 건에 더 마음이 가는데요. 작은 회사가 특허 등록이 잘 돼서 로열티도 받고 상장도 하고 기술이전도 성공적으로 하고 이러면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낍니다. 

최 변리사 소송업무에서 변리사 역할이 궁금해요. 

김 변리사 제 담당분야인 화학 쪽에서는 소송이 한 번 걸리면 덩치가 크니까 소송 자체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소송보다는 자문을 선호하고요. 예전에는 일단 치고받고 보자 이랬는데 요즘은 양쪽 다 출혈이 크고 아무 실익이 없으니까 싸우기 전에 미리 충분한 자문을 거쳐서 소송을 피하는 쪽으로 가죠. 

소송 전에 양자가 협상하는 과정에서 변호사와 변리사가 다 필요한데요. 구체적인 기술 가액을 결정하는 부분에서는 변호사가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특허가 침해인지 아닌지에 따라 의뢰자의 입지가 달라지니까, 전체적으로 그 사람이 갑인지 을인지를 가려주면서 협상에 임하는 전략을 세워주는 게 변리사의 역할이에요. 

요즘은 웬만하면 소송까지는 가지 않고 그 전에 해결이 되요. 한번 소송하면 3년까지 시간이 걸리거든요. 3년 지나면 권한을 다투는 그 기술은 쓸모가 없어져요. 승소 판결을 받는다 한들 아무 의미가 없는 거지요. 권리자 입장에서도 그거는 결코 원하는 않는 결과에요.

  

꼼꼼함, 어학능력, 그리고 일을 대하는 진지하고 적극적인 자세

최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말씀하신 많은 업무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요. 변리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김 변리사 변리사는 독립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협업이 거의 없으니까. 가끔 외롭지만 어떻게 보면 편하거든요.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내는 게 중요한 직업입니다. 혼자서 A부터 Z까지 모두 책임지고 간섭받지 않는 그런 독립적인 업무를 좋아하는 사람, 그런 일을 잘하는 사람이 적합한 것 같아요. 

꼼꼼해야 되는 건 기본이고요. 굉장히 챙겨야할 게 많아서 항상 메모하고 기억하고 저장해놓고, 그런 걸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적합하죠. 그리고 어학이 중요해요. 변호사는 사실 타국어로 내 소송을 설명할 일이 드물잖아요? 반면 특허 쪽은 기본이 국제적인 업무에요. 

공부하면서 각국 특허 독립의 원칙이라고 들어보셨을 거예요. 항상 모든 특허는 각국에 별도로 특허 신청을 해야 되고, 별도의 특허권을 확보해야 되요. 한국에서 특허를 받았다고 해서 미국에서 보호를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서 보호를 받으려면 별도의 신청을 해야 하는 것이죠. 기술이 국경을 넘어서 유통되니까 당연히 해외 출원이 많고요. 

이 때 변리사는 각 국의 대리인들이나 발명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어학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죠. 모든 문서, 서신 이런 것들이 다 영어지만 일하다 보면 일본어, 중국어도 다 필요하니까 공부해두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죠. 그래서 어학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이면 변리사로 적합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외국인과 유창한 대화를 하는 수준을 원한다기 보다는 기본적으로 서신이나 문서작업이 중요합니다. 토익 같은 경우 인경 씨처럼 990점 맞으면 좋겠지만 850점정도 맞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변리사 꼼꼼해야 한다니 걱정이 되요. 전 평소에 잘 덤벙대는 편이거든요.

김 변리사 저도 굉장히 덜렁거려요. 물건도 놓고 다니고 사람들 생일도 잘 못 챙기고. 그런데 일할 땐 좀 다르더라고요. 결국은 태도의 문제인데, 일할 때는 긴장하고 내 일이다 생각하면서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거 같아요. 제가 무의식중으로 나머지 일들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봐요. 심지어 집안 일조차도요. (웃음) 

그래서 제 생각에는 기본적인 소양이 꼼꼼한가, 꼼꼼하지 못 한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일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고 적극적이면 다 극복할 수 있어요. 자기의 성격적인 백그라운드가 별로라고 하더라도.


변리사, 일과 생활을 양립하기에 좋은 직업

최 변리사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도 키우면서 다니기에 변리사는 좋은 직장인가요?

김 변리사 일하는 엄마에 대한 복지가 다른 직군보다 훨씬 낫다고는 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보통 법무법인이나 특허법인 중에서 별도로 탁아소를 운영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거든요. 다만 변리사 업계 분위기가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점이에요. 일 자체가 많기 때문에 종종 야근을 하지만 본인한테 할당된 업무만 잘 한다면 먼저 집에 가는 게 전혀 문제되지 않는 직업이라는 건 얘기할 수 있어요.

또 직장과 가정을 양립하는 조건 중에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수입이거든요. 여러 가지 면에서 봤을 때 12시까지 격무에 시달리는 다른 전문직이나 기업들에 비해서 상당히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보다 변리사들은 페이가 좀 적지만 생활의 질이라는 면에선 더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격무에 시달리면서 돈을 더 벌고 싶진 않아요. 넘 제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학교 얘길 좀 해볼까요. 분자생물학과 이동희 교수님 아직도 계시나요?

최 변리사 네. 계세요. ^^

김 변리사 학교 다닐 때 저희 지도교수님이셨는데요. 선생님이 항상 하신 말씀이 유기화학을 꼭 들어 두라는 거였거든요. 그 때 전 뭣도 모르고 ‘변리사할 건데 골치 아픈 유기화학 뭐 하려고 들어’ 이러면서 도망 다녔는데요. (웃음)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어요.

최 변리사 그렇구나. 전 유기화학 Ⅰ은 들어뒀어요.

김 변리사 잘했네. 유기화학 Ⅱ도 꼭 들어요. 일을 하는데 정말 필요해요. 유기화학, 생화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면역학, 다 필요하죠. 인경 씨는 아직 1년 대학생활이 남았으니까 이 중에 못 들은 거 있으면 챙겨놔요. 나중에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웃음) 

대학시절 전 참 재미있게 지냈어요. 저희는 10명이나 같이 몰려다녔는데요. 후미진데 어두컴컴한 장소 참 좋아하죠. 도서관에서 내려와서 본관 뒤쪽 숲 속 벤치에 모여 앉아서 어두워지는 줄도 모르고 얘기하다가 밤에 수위아저씨한테 쫓겨나고 그랬죠. 

최 변리사 10명이면 정말 많은 수인데요? 작은 동아리 급이잖아요. (웃음) 

김 변리사 제 학창시절의 가장 큰 보람이죠. 세월이 지나 각자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면서 일부가 잠수를 타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성찰이 끝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돌아와 뭉치더라고요. 마흔을 앞 둔 지금까지도 만나요. 사람이 많으니까 이쪽에서 토라지고 싸워도, 잠수를 타도 남은 인원이 모임을 지키니까 좋은 것 같아. (웃음) 

신기한 게 10명이 모두 생물학과 출신이지만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예요. 10명 다 공부에 뜻이 없어서 대학원에 가지는 않았고. 유학을 가서 공부를 계속한 친구, 은행원 했던 친구, 의대 진학한 친구, 약사, 공기업 취직, 영화감독, 홍대 미대 대학원가서 그래픽 디자이너 하는 친구 정말 다양하죠. 

이제 인경 씨에 대해서도 좀 들려주세요. 요즘 시험 붙는 친구들은 공부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한데요. 먼저 토익 만점은 어떻게 받은 겁니까. (웃음) 외국에 살다 왔나요? 

최 변리사 이화 들어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게 교환학생 가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1학년 때부터 영어회화 공부는 꾸준히 했어요. 외국에서 살아본 적은 없고요. 어쩌다가 점수가 그렇게 나왔는데 비결은 정말 모르겠고요. 그냥 좋아서, 꾸준히, 열심히 했는데요. 싱거운가요. (웃음) 

김 변리사 시험공부는 얼마나 했어요? 난 졸업하고 시작을 했는데. 우리 땐 휴학이 요즘처럼 일반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 

최 변리사 2007년 겨울에 마음먹고 시작했으니까 수험기간은 휴학기간 2년, 반년은 재학하면서 병행했었고요. 한 번에 붙고 싶어서 휴학기간을 길게 잡았어요. 요즘은 MEET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휴학 정말 많이들 해요. 변리사 공부를 보통 2-3년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 연수 가서 보니까 1년 만에 붙었다는 사람도 있긴 했고요. 

보통 사법고시 준비하는 친구들은 신림동으로 간다는데 저흰 거의 학교에서 준비해요. 변리사는 솟을관 같은 고시 기숙사 입주자격이 안되니까 주로 집에서 통학하고, 시험 직전 2달 정도는 학교 앞 원룸에 있으면서 공부했고요.

  

질풍노도의 수험생활,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 

김 변리사 난 졸업하고 변리사 준비하면서 집 근처에 있는 구립도서관에 다녔어요. 옆 좌석에서 중학교 1학년 애들이 하늘 천 쓰고 있고. (웃음) 합격하고 <변시연구>라는 잡지에 원고료 20만원 받고 수기를 썼는데 제목이 <절대 고독의 3년>이었어. (웃음) 혼자 밥 먹고. 하루 종일 말 안하고 정말 고독하더라고. 

사실 수험기간은 시간이 굉장히 많잖아요. 아무 일도 안하고 공부만 하는 건데.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직장인 같은 마음으로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했던 것 같아요. 평소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시험 가까워서는 10시까지. 

시간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감정조절을 정말 잘 해야 되는 거도 맞는 얘긴데 그게 잘 될 리가 있나요. 질풍노도의 시기 아닙니까. (웃음)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고민들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잠재우겠어요. 전 그래서 이틀 집중해서 공부하면 하루는 쉬어줬어요. 그렇게 안하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이죠. 

우울함이 엄습하면 집에는 엄마 눈치 보이니까 못 들어가고 백화점 쇼핑도 한 번 가고 비디오방에 혼자 가서 영화보고. 물론 100일 전에는 모든 계획을 하루하루 단위로 세워서 각 과목별로 페이지까지 정해놓고 필사적으로 공부했고요. 시험에 다가오면서 처음에는 1주일에 한 과목, 그 다음에는 3일에 한 과목, 그 다음에는 하루에 한 과목, 그 다음에는 하루에 두 과목 이런 식으로 양을 늘려서 시험 전날까지 세분화시켜서 범위 정해서요. 

최 변리사 저도 마지막에 그랬어요. 그때는 쉴 수가 없죠. 

합격 팁이라고 하긴 부족하고요. 수험생활에 대한 조언 같은 걸 다음에 공부할 친구들에게 한다면 전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하나는 스트레스 조절은 꼭 해라. 저도 공부하면서 물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요. 전 주로 영화로 풀었어요. 중앙도서관 시청각자료실을 애용했죠. 의미심장한 스토리 보면 공부에 방해가 되니까 되도록 애니메이션을 보려고 했어요. <꼬마 니콜라>, <업>, <픽사 애니메이션 단편작> 이런 거요. 드라마나 스릴러는 잔상이 많이 남으니까. 보고 기분 좋아지는 영화들 위주로. 음악 들으면서 걷기도 하고요. 

두 번째는 누가 진도를 얼마나 나갔다더라. 누구는 그 과목을 단 며칠 만에 정복했다더라. 이런 카더라 통신에 연연하지 않고 주위의 다양한 자극에 어느 정도 담담해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초연할 수 있는 능력. 2차 시험 준비할 때는 학원에 나가 시험을 보고 매 주 순위가 나와요. 오늘은 내가 좀 못썼겠거니 오늘은 잘했네. 이러면서 일희일비 말고 페이스 조절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참, 선배님 만나면 이건 꼭 여쭤보고 싶었는데요. 수습기간에 어떤 걸 하면 가장 보람 있을 까요? 

김 변리사 요즘 사람 교육시키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특허법인들이 가능한 한 경력을 뽑으려고 해요. 인경 씨는 아직 대학생이니까 경력을 쌓을 순 없겠지만 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특허맵 작성이나 선행기술 조사 같은 거 해두면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 게 외주로 많이 나가고 있거든요. 영어 잘하니까 명세서 번역하는 것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나중에 면접관이 봤을 때는 아무 경력도 없는 사람보다 매력이 있죠. 시험 합격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고 다시 경쟁이니까. 그렇다고 일만 하라는 건 아니고요. (웃음) 그동안 못해봤던 것도 해야지. 뭐가 제일 하고 싶었어요?

최 변리사 친구들과 실컷 노는 거요. 동아리를 안 해봐서 동아리도 하고 싶어요. 최근에 변리사 시험 동기들하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합격자들끼리 통기타모임을 만들었는데 잘해보고 싶고요. 운동, 여행, 봉사 다 해보고 싶어요. 그 전에는 스펙 쌓기 위주로 활동했었는데 이젠 그런 거에 구애 안 받고 마음껏 하고 싶은 거 해 보고 싶어요.

  

"일-가정-취미,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조화로운 삶 꿈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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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선배님의 인생계획을 듣고 싶어요. ^^ 

김 변리사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일에 있어서는 제 고유의 고객을 개발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시니어 파트너가 될 수도, 개업을 할 수도 있겠죠. 길게는 조화로운 삶을 살 거예요. 일과 가정의 조화, 일과 여가의 조화. 어느 한 곳에 집착하거나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이룬 삶을 살고 싶어요. 

전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면서 보낼 것인가.’ 이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1년 반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그게 제 삶에 큰 임팩트가 된 것 같아요. 삶과 죽음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족이 죽으면 본인도 일부는 죽는다고 해요.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은 야근 안 할 거다’라는 거예요. 할 수 있는 한 효율적으로 일을 해서 짧은 시간 내에 끝내고, 집에 가서 가족들이랑 귀한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잠 든 다음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책 읽고, 영화도 보고, 명상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할 겁니다.

다행히 변리사는 저의 이런 가치관과 잘 맞는 직업이고요. 충분히 전망 있고, 장점이 많은 직업인만큼 적성에 맞는다면 이화의 후배들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합니다.  

 

│글·편집 이화여대 홍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