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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사법고시 합격, ‘딸 부잣집’ 법조인 자매이야기

  • 등록일2015.03.17
  • 5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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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6일 강원도 최전방 지역인 화천군 사내면 출신 딸 부잣집에 경사가 났다. 넷째 딸 이영심(법학·03년 졸)씨가 사법고시(52회)에 최종 합격한 것. 집안 전체로는 맏언니 이영희(법학·94년 졸)와 다섯째인 막내동생의 사법고시 합격에 이어 3번째다.

이들 중 영희 씨와 영심 씨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동문사이다. 자매에게 90년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은 보습학원 하나 찾기 어려운 곳이었는데 어떻게 세 명의 자매가 나란히 법대에 들어갔는지, 91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친의 빈자리는 어떻게 극복하고 고시에 합격했는지를 물었다.

 

주로 돌아온 대답은 두 가지였다. 강인하고 긍정적인 어머니와 하나님.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런 말이 보태졌다. “비범한 걸 추구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직하게 공부했습니다. 지금도 대단하지 않은 제가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학창시절 유일하게 받아 본 사교육이 노량진에서 구한 ‘성문영어 테이프’라는 이영심 씨와 큰 언니 이영희 변호사를 대치동의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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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wha 먼저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영심 감사하죠, 하나님께. 그리고 뒷바라지 해 주신 어머니께. 그리고 이젠 마냥 좋다기보다는 ‘다행이다, 다시 (수험생활을) 안하게 돼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막내동생과 같이 공부를 시작했는데 2008년 동생이 먼저 합격했거든요. 기특하게 언니랑 같이 들어가겠다고 연수원 입소를 유예했었어요.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반드시 붙을 거라는 믿음을 전제한 거니까 고맙기도 하고 힘이 됐습니다. 아무래도 ‘진짜 공부’는 그때부터 한 게 아닌가 싶어요.

 

The Ewha 자매간 우애가 대단하신 것 같네요.

 

영희 저희가 좀 그래요. 영심이랑 막내는 수험기간 내내 같이 다녔어요. 영심이가 뭐든 꼼꼼하게 잘 챙기는 스타일이라 아침에 막내 깨워서 도서관에 같이 가고, 밤에 와서 같이 사례 스터디도 하고요. 전 업무하다가 자정을 넘겨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밤늦게까지 어린 동생 둘이 불 밝혀가며 도란도란 공부하는 모습이 저 자신의 정서에도 도움이 됐어요.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97년에 가족들이 화천에서 신림동으로 이사했고요, 동생도 바로 법학부 들어왔으니까(1998) 그때부터 헤어지지 않고 쭉 같이 살았는데 가족들이 같이 지내는 게 힘이 되요. 많이. 각박하다거나 외롭다는 느낌이 잘 안 들어요. 게다가 저희는 가족 전체가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더욱 그렇죠.

 

The Ewha 최종합격을 확인한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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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심 혹시 불합격하면 가족들 얼굴 볼 자신이 없어서 발표를 앞두고 혼자 집을 나왔어요. 법무부 발표가 12시에서 2시로 연기됐는데 그것도 모르고서요. (웃음) 보통 합격하면 핸드폰이 지인들 축하전화로 불이 나거든요. 두 시간 가까이 잠잠한 핸드폰을 보면서 ‘떨어졌구나…’ 생각했죠. 마음을 추스르려고 교회 가는 버스를 탔는데 가족들한테 전화를 받은 거예요. 합격자 명단에 이름 있다고. 바로 전에 크게 절망해서 반전의 기쁨이 컸어요.

 

영희 전 너무 오래 전이라 합격순간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웃음) 친하게 지내던 동기 5명이 같이 스터디하고 같이 붙었거든요. ‘이대 90학번 5인방*’이라고 당시엔 나름 유명했어요. 박은정, 이진화, 이미화, 김선주, 저 이렇게 해서. 97년이었는데 같은 학번에서 이렇게 많은 붙은 경우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편집자 주│ 1997년 제 39회 사법시험에 본교생 7명이 합격했다. 합격자인 신한미 동문(법학․93년 졸), 김선주 동문(법학․94년 졸), 박은정 동문(법학․94년 졸), 이미현 동문(법학․94년 졸), 이영희 동문(법학․94년 졸), 이진화 동문(법학․94년 졸), 임지아 동문(영문․95년 졸) 중 94년에 졸업한 5명이 ‘이대 90학번 5인방’이다.

The Ewha 법조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영희 아버지 영향이 컸어요. 강원도 전방 사단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셨는데 시골에 있다고 움츠러들지 말고 더 큰 꿈을 꾸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신문에 판사 임용 받은 여자 법조인 기사가 실리면 스크랩해서 주시면서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시골은 아무래도 분위기가 많이 보수적이에요. 남아선호가 뚜렷하거든요. 제 유년시절인 7-80년대는 더했죠. 저희 집이 딸만 다섯이니까 주변에서 양자라도 아들을 들이라고 진지하게 충고할 정도였으니까요. 중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이 법조인이 되는 게 꿈이라고 그러면 애들이 막 웃고 그랬어요. 여자가 법조인이 되는 게 희귀한 일이고, 그게 같은 학교 반 동기일거라고는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포부를 심어주시지 않았으면 법조인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항상 농담으로 ‘우리 이 판사님’ 이런 식으로 동기부여해 주시고. 늘 감사하고 있어요.

 

영심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이 늘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넓은 시야를 가져라’ 이런 말씀 해주신 게 힘이 됐고요, 저는 거기에 더해서 큰 언니의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언니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 집에 올 때마다 “우리 학교 너무 좋다, 전공도 법이 제일 좋다, 법학 공부가 얼마나 재미있는 지는 해 본 사람만 안다.” 이런 말을 수도 없이 했거든요. (웃음) 자연스럽게 법대에 진학했고, 과장이 아니더라고요. 적성에도 잘 맞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The Ewha 시골은 아무래도 교육인프라가 도시보다 열악하지요?

 

영희 학교 다닐 때 화천 시내에 서점이 없었어요. 서울에 사는 친척언니들 손에 이끌려서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점도 중학교 때 처음 접했던 것 같아요. 충격이 대단했어요. (웃음) ‘수학정석’, ‘성문영어’ 이런 참고서를 처음으로 사 봤고, 그거 보고 혼자 공부한 기억이 나요. 특별한 공부 비법 이런 건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전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심 저 역시 특별한 것 없고요. 언니가 물려 준 참고서랑 선생님과의 관계 정도요.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께 질문하러 내려갔어요. 공부하다 궁금한 게 생기면 교무실로 내려가서 물어봤는데 선생님들 모두 싫은 내색 없이 가르쳐주신 게 참 감사해요. 공부에 관심가지고 집중하고 궁금증은 바로바로 해결하고 그러면 실력은 자연스럽게 느는 것 같아요.

 

The Ewha 이화 재학시절 얘기를 해볼까요?

 

영희 많은 법대생들이 그렇듯이 ‘무늬만 고시생’으로 살았어요. 부모님한테는 늘 고시 공부하는 딸 이미지였지만 미팅도 많이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남들과 다름없는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특히 ‘법기독(이화여대 법학부 기독교 동아리)’ 창설 시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게 기억에 남아요. “‘버톨릭’(서울대 법대와 이화 법대 가톨릭신자 연합동아리)도 있는데 우리도 법대 내에 기독교 동아리 하나 만들자.” 이런 취지로 4-5명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규모가 커졌다고 들었어요.

 

영심 저 때 특징이라면 교수님과의 인간적인 유대가 돈독했다는 거예요. 석인선(헌법 전공)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셨는데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냅니다. 학교 다닐 때도 격의 없이 대해주셨지만, 특히 고시 공부할 때는 가끔 힘내라고 문자도 주시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기대를 하고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긴장이 돼서 더 열심히 하게 되잖아요. 얼마 전에도 그동안 수고했다며 밥 사주셨어요.

 

The Ewha 수험생에 대한 학교의 지원은 만족스러웠는지 궁금합니다.

영심 그럼요. 심리적으로도 그렇지만 학교 고시반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민법 전공하시는 김병선 교수님(이영희 변호사와 90학번 동기)께 특히 감사합니다. 신림동에 종종 오셔서 격려해주셨거든요. 사실 고시촌에 있으면 누가 같이 공부하는 지도 잘 모르는데 한 자리에 모여서 얼굴도 익히고, 합격생들도 불러서 공부 노하우도 공유하게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그런 게 전 참 좋았습니다.

 

2차 시험준비 들어가면 주말마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모의시험을 봐요. 시험 보고 나면 강평을 들으러 학교에 가는데 송덕수 교수님(현 법학전문대학원장)의 강평이 내용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도 큰 힘이 됐어요. “너희들 조금만 힘내라. 시험을 봐 보니까 다들 잘 할 수 있겠다.다른 학교까지 다 채점을 해봤지만 역시 이화가 제일 잘 써.” 이러시면서 격려하시는 데 학교에서 지지받고 응원 받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굉장히 든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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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 우리 때도 솟을관에서 시험을 봤었어요. 고시반 통해서 강의를 추천받는다거나 각종 정보를 얻은 건 저희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다만 동생을 보니 지금은 지원이 더 체계화된 느낌이에요. 예전에는 신림동으로 교수님들이 오셔서 책값 겸 격려금으로 약간의 장학금을 전달해주시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신림동 강의실 빌려서 모의고사 치르고 채점, 강평까지 해주시잖아요. (영실 씨를 향해) 아, 그리고 3차 면접 때!

 

영심 아, 모의면접. 정말 도움 많이 받았죠. 학교 경력개발센터에서 사법고시 2차 합격생들 대상으로 조를 짜서 집단 모의면접을 해주셨는데 면접에 임하는 자세나 말투, 표정 같은 것까지 세세하게 모니터해주셨어요. 한 번 그렇게 하니까 면접에 가서는 떨림 현상이 줄더라고요. 큰 도움 됐어요.

 

The Ewha 수험생활의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영심 너무 비범한 걸 찾으려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정말 평범한 게 비범한 거라는 말이 있잖아요. 고시공부라는 게 정말 규칙적으로 임해야 할 수 있는 공부거든요. 자기에게 맞는 수험계획을 세우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찾아와도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길 조언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수험생활을 즐길 수 있으면 더 좋겠죠. 저는 그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고요. (웃음)

 

그리고 중요 판례를 100개 정도 암기해서 음성파일(mp3)로 녹음해서 통학하거나 혼자 밥 먹을 때 계속 들었었는데요. 제한된 시간에 많은 분량의 글을 써야하는 2차 시험에서 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생각하는 동시에 문장이 나가야하니까요. 수험장에서 펜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신기한 경험을 후배님들도 하실 수 있길 기원해요. 저도 친구한테 배운 노하우입니다.

 

The Ewha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으세요?

 

영심 ‘청지기’ 같은 법조인이요.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요 15:16)’라는 마음을 지켜가고 싶어요. 어떤 위치에 있든 그건 제 것이 아니라 잠시 ‘그 옷을 입은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그걸 내 것인 양 착각하고 내 권력인 양 휘두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께서 또 어떤 옷을 갈아입히실 지 전 모르는 거거든요. 그래서 항상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어느 곳에 어떤 것이 주어지든 그 직역에 충실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죠.

 

영희 전 중년에 접어드는 나이잖아요. 지금까지는 정말 정신없이 뛰어왔지만 이제 내가 받은 것들을 어떤 식으로 이웃과 사회에 돌려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연수원 동기들이나 특히 이화 법조인 동문들을 만나면 중심화제가 사회 환원에 대한 것인데요. 제가 이런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게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죠.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금전적인 환원도 좋지만 재능기부 같은 방식도 생각하고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제가 법인에 속한 어쏘 변호사(associate lawyer)였지만 새해부터는 파트너(partner, 주변호사)가 되거든요. 조직 내에서 운신의 폭이 커지는 만큼 책임도 같이 늘게 되는 데요. 법조인으로서의 제 커리어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남과 나누며 사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되, 개인적으로는 항상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변화에 움츠리지 않고 일단 부딪혀보자는 신조를 지켜가면서요.

 

The Ewha 힘을 주는 문장이 있다면 이화가족들과 공유해요.

 

영희 예수 안에서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9:14~29). 이 말을 가장 좋아해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항상 이 구절을 떠올려요. 능력에 대해 회의할 시간에 일단 자기를 다 쏟아 부은 다음,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면 가장 좋으신 때에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나에게 결실을 돌려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영심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골로세서 3:22~25) 구절입니다. 하찮아 보이는 일, 나에게 딱히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에 부딪혔을 때 많이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예를 들면 남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할 때요. (웃음) 고시공부 할 때 그게 참 힘들었거든요. 그럴 때 ‘그래,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자. 그래도 이렇게 듣는 게 그 사람한테도 뭔가 도움은 되겠지.’ 이런 생각으로 견뎠던 것 같아요.

 

The Ewha 마지막으로 후배 이화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마디

 

영희 가리고 숨는 게 겸손이 아니다! 실수하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 교감하는 인재가 되십시오. 살아 보니까 지나친 자의식은 발전을 막더라고요. 해피 뉴 이어~

 

영심 간절히 원한다면 두려워말고 행동하자! 대학시절 여행이든 만남이든 공부든 치열하게 자신과 대면하며 사시길 기원합니다. 긴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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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편집 이화여대 홍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