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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뉴스

BT·NT 선도하는 분자생명과학부

  • 작성처
  • 등록일2006.08.21
  • 12280
본교 분자생명과학부가 중앙일보가 연재하는 '대학, 이래야 산다' 시리즈에 소개되었다.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대학들을 집중조명하는 시리즈이다.

다음은 이와 관련한 중앙일보(8월 21일자)의 기사이다.


대학, 이래야 산다 :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세계 석학 모셔 BT·NT 선도


여름방학 중인 7월 서울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C동 2층. 고려대 박사 1학기인 조춘석(33)씨가 실험대와 책상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그의 전공은 X선으로 분자의 구조를 보는 X선 결정학. 그는 "연구 주제나 실험 편의성 때문에 파견 형식으로 (이대로) 나와 있다"며 "(이대의) 여건이나 연구 결과는 외국 연구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대 이대 석사 5학기째인 최민희(27)씨도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대학원생으로는 드물게 지난해 '네이처'에 논문을 실은 그는 "(실험) 열정이 많아 좋다"고 했다.

1990년대까지 이화여대는 자연과학과는 거리가 있었다. 기초분야에선 더욱 그랬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달라졌다. 네이처.사이언스.셀 등 세계적 학술지에 등재했다는 소식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BT)이나 나노과학(NT) 쪽이 활발하다. 학계에선 "여성의 섬세함으로 첨단 과학을 선도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 스타 과학자의 채용=97년 가을 한 심포지엄장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이서구 박사를 이화여대 교수들이 보고 싶어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박사는 당시 과학기술부 등이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은, 세포 신호전달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권위자였다. 일면식도 없던 이대 교수들은 다짜고짜 "이대로 오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 박사는 당시 "이상한 소리"라고 넘겼다.

그러나 이듬해 이 박사는 석좌교수 직을 받아들였다. 2004년 영구 귀국했다. 당시 미국 동료 과학자들이 이 교수에게 "사이언스를 접었니"라고 물을 정도로 과학계에서 이대는 '무명'이었다.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C동에서 정우진(左).
창동신(右) 교수가 대학원생들과 단백질 정제
실험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총장이던 장상 민주당 공동대표는 이서구 교수의 스카우트에 대해 "이대가 종합대학으로 크려면 자연과학도 강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며 "결국 대학은 교수에 의해 결정나는 만큼 세계적 인물을 스카우트하기로 하고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교수 채용 등 연구에 대해선 전권을 보장받았다. 이 방침은 신인령(2002~2006) 총장을 거쳐 이배용 현 총장까지 바뀌지 않고 있다.

◆ 선택과 집중=이 교수는 이대에 와 세포 신호전달 분야를 육성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이 교수의 NIH 네트워크도 활용했다. 99년 NIH에 이화여대와 공동연구실인 세포 신호전달 공동연구실을 만들었다. 그는 세포 신호전달 분야의 교수만 7명을 채용했다. 교수 승진심사 때 논문 업적 기준을 강화했다.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의 상위 20%급 논문에 교신 저자로 한 편 또는 두 편 이상 내야 승진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 횟수(IF)도 승진의 중요 변수로 삼았다.

이런 노력은 점차 결실을 보고 있다. 이 교수가 처음 왔을 때는 미국 생화학회지(JBC) 급에 논문을 낸 교수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BT 분야에서 교수 18명이 SCI급에 53편을 발표했다. 이 교수팀은 우수연구센터(SRC.98년), BK 21(99년), 국가핵심연구센터(NCRC.2006년) 등으로 지정됐다. 연구비도 매년 늘어 지난해 연간 83억원이나 됐다. 대학원생도 몰렸다.

이 연구처장은 "예전 평가 때 우리가 1등을 하면 '왜 이대가 1등 하느냐'고 했던 사람들이 이젠 '1등 할 만하다'고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대는 이 같은 전략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고 있다. NT 분야에선 서울대 최진호 교수를 석좌교수로 영입했다. 서울대 최재천 교수를 스카우트한 것도 같은 이유다.

2006년 8월 21일 중앙일보 고정애 기자(글), 김태성 기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