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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세상을 선물합니다, 김미경 동문(특교 86졸)

  • Date2020.04.06
  • 1287
김미경 동문(특교 86졸)


김미경 동문(특교 86졸)이 특교86김미경장학금 1,000만원을 후원했다. 졸업 후 한 번도 모교와 접속한 일이 없다는 그녀는 ‘열심히 공부하지만 형편이 덜 어려운’ 특수교육과 1명과 영어교육과 1명을 선발해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도록 후원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항공료를 걱정하는 장학생 한명에게는 흔쾌히 항공료 100만원을 추가 지원하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선물하고 싶다는 김 동문을 이메일로 만나봤다.

 


누구나 여유가 생기면 후원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학교 후배들을 위해서 장학금을 후원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평소 저희 부부는 남을 도우면서 살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삼남매를 어느 정도 키워 놓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실천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10여 년 전부터 몇몇 기관에 기부를 해왔으나, 그 기관에서 우리의 의도와 일치하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어요. 시아버님께서 생전에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어려운 학생들을 돕겠다는 꿈이 있으셨는데 일찍 운명하시면서 실천을 못하신 것이 있어 저희 부부가 직접 장학재단 설립을 알아보기도 했는데요, 개인이 장학재단을 설립하기에는 과정도 복잡하고 규정도 많아 포기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모교에 장학금을 후원하면 보다 쉽게 후배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부를 결심하게 됐어요.
 


보통 장학기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쓰이길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별히 장학금을 해외연수비로 써달라고 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학금은 보통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경우가 많아서, ‘열심히 공부하지만 형편이 어렵지 않은’ 범주의 학생들이 오히려 장학금을 받기 어렵지 않나요?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실, 저희 7남매 중 4명이 모두 대학생이어서 부모님께서 힘들어 하셨는데, 대학생 과외 아르바이트도 법적으로 금지됐던 시절인데다 일반 아르바이트(당시에는 편의점도 없는 등 아르바이트 업종 자체가 드믈 때!) 자리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우선이라 저희 형제들은 부모님을 금전적으로 도와드릴 방법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 제가 4학년 2학기 때 성적우수자에게 주는 이화장학금을 받게 됐는데, 이 소식에 너무나 기뻐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마 일생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칭찬 중에서 가장 큰 칭찬을 그때 받지 않았나 싶네요(^^).


요즘도 저와 같은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었어요. 학비는 어찌어찌 해결하더라도 남들 다가는 어학연수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틈새에 놓인 후배들이 있을 거라고요. 그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생존 수단인 영어를 현지 유수의 교육 기관에서 배울 수 있는 어학연수 기회를 지원해 주는 일이 가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의 후원을 받아 특수교육과 1명과 영어교육과 1명을 선발하여 여름방학 때 아일랜드와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들 장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하하,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을 전달 부탁드려도 될까요? 

 

국내에서만 받아 온 교육 방법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교육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각기 다른 나라의 학생들의 겉모습과 행동, 생각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도 배웠을 거고요. 서양인들이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일찍 성숙해지고 부모로부터 심리적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하는 면도 눈에 보였을 테고 저희보다 왜 선진국민이라는 말을 듣는지도 알게 됐을 거예요.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전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고요, 그들의 장점은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장점을 살려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좀 더 발전한다면, 그리고 영어 실력이 향상되었다면, 그래서 사회에서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다면 저의 소기의 목표는 이루어졌다고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너무 많은 초·중·고교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꿈이 없어요. 아마도,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서 감히 용기를 낼 힘이 없어서인 것인지, 주변에 롤 모델이 될 만한 어른을 찾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절박하게 배고픈 적이 없어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욕 자체가 없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앞으로 교사가 되어 학생들 지도할 때 직접 경험한 해외의 더 넓은 세상을 전달해 주어 미래세대가 더 큰 꿈을 꾸도록 지도하는 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수교육과와 영어교육과 이 두 과의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시게 된 동기가 있으신가요?


두 과 모두 제가 감사와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영어교육을 부전공했는데 제게 매우 잘 맞는 분야여서 자부심이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해외 근무하는 부모님을 따라 멕시코시티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모국인 수준에 근접하는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에 선진국에서 이미 특수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고, 아버지께서는 제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특수교육이 유망해질 거고 성격도 맞을 거라고 권유하셔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미 본토에서 익힌 영어 실력 또한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 부전공으로 영어교육을 선택하게 되었고요. 

 

결혼 후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 포항에서 큰 아들, 군산에서 둘째 아들, 그리고 포스트닥터로 미국에서 지낼 때 막내인 딸을 출산하여 3남매를 모두 연고 없는 곳에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포스트닥터일 때랑 교수 안식년일 때 미국의 공립 초·중·고교의 ESL 학급 시간제 도우미를 하면서 다양하게 발전하는 영어교육 현장 경험도 했지요. 군산에서 90년대 중반부터 제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영어지도를 하고 있는데요, 시작 당시 군산에서는 특수교육 교수법을 가미한 선도적인 영어 교수법으로 열악했던 영어회화 분야에 영향력을 끼친데 대해 제 나름대로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수교육과 영어교육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이 저의 인생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듯이, 이 두 분야를 전공한 후배들이 좀 더 넓은 시야와 탄탄한 실력을 가진 교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