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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품은 따뜻한 열정

  • Date2020.03.22
  • 3568
이충선 한아장학재단 이사장 (약학 56졸)

세상을 품은 따뜻한 열정  첨부 이미지

이화에 개발도상국의 여성 인재를 전액장학금으로 교육시켜 자국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 Ewha Global Partnership Program(EGPP )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동창이 있다.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신념으로 개발도상국 여성 교육을 위한 비전을 품고 노력해왔던 이충선 동창(약학 56년 졸)에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충선 동문은 2009년 미국에서 한아장학재단을 출범했다. 나라가 서려면 훌륭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성장 잠재력이 있는 개발도상국의 인재를 선발하여 미국에서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위대한 계획은 2007년 아프리카 선교여행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은퇴하면 내가 좋아하는 언어와 역사 공부를 실컷 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머릿속에 저장이 안되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선교지를 여행하기 시작했어요. 멕시코, 도미니카, 아프리카.... 내가 약사이다 보니까 내 역할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이 일 또한 체력적 한계에 부딪혔어요. 그러다 아프리카 선교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해답을 찾았죠. ‘이들에게 지도자가 없구나. 이들 국가를 위해 지도자를 키우는 게 내 마지막 사명이다.’라고요.” 그 후로 2년동안 자나깨나 이 일을 마음에 품었고, 이에 공감하는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기도로 준비했다. 장학생들이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숙소도 마련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남이 하던 걸 하면 그대로 쫓아가면 되는데 전혀 새로운 걸 하려니 너무 힘들더라구요.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딪히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어요.”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즉시 “힘든 건 잊어버리자!”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은퇴 후에 겁도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한 그녀의 놀라운 추진력이 ‘힘든 일에 굴하지 않는 이 꿋꿋함’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 열심히 구상하고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는데 어쩌면 엉뚱한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민 1세대로 A to Z까지 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고 한 일이었는데 순 엉터리였어요.” 

 

첫해에 선발된 학생 2명이 불편하다며 숙소를 나가버렸다. 제대로 난관에 봉착했다. 좌절의 시간을 거친 그녀는 이 일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대신 축적한 교육역량으로 그녀가 품었던 것과 꼭같은 비전을 가지고 개발도상국 여성들을 지도자로 길러내고 있는 이화여대에 장학 후원을 하고, 의미 있는 일을 꿈꾸는 또 다른 사람들이 이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찾았다. “똑같은 돈이라도 사람에 따라 화폐 가치가 달라요. 내가 십년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모은 만불과 내 아들 세대의 만불은 너무나 다르죠. 그네들은 여행 한번 다녀오면 다 없어지는 돈인걸요. 그렇다고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들이 하는 좋은 일에 비하자면 또 내 돈은 너무나 허무해요. 미국에 이민 와서 평생을 모은 재산을 가장 의미 있게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이 있어요. 이들에게 내가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어요.” 


한 학생을 4년간 후원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약 4,000만원이므로 후원 금액도 수억원에 달했다.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하는 걸 보면 주변에서도 따라와 주지 않겠어요?” 기대에 찬 목소리로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런 그녀에게 롤 모델이 있다. 그녀는 김활란 선생의 이야기를 꺼냈다. “김활란 총장님이 6.25 때 사방을 쫓아다니면서 모금을 하셨어요. 그 덕분에 우리는 등록금이 서울대와 똑같은 시절에 학교를 다녔어요. 우린 김활란 총장님이 한국 대표로 UN에 나가서 활동하시던 모습을 봤고, ‘기독교 문학’이라는 수업 시간에 총장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자란 세대예요.” 한국 여성 교육을 위해 일평생을 바쳤던 김활란 선생의 삶은 자연스레 그녀에게 깊이 각인됐다. 그 간절한 호소와 눈물의 기도를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자신도 그와 같은 삶을 살리라 다짐한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게 있어요. 엉뚱한 짓 잘하고, 남이 못하는 짓 잘하고, 그리고 사람 끄는 거 잘하고.” 아닌 게 아니라 인터뷰를 했던 날 그녀 곁에는 4명의 벗이 함께 했다. 언제나 주변에 좋은 벗들이 있기에 같은 뜻을 품고 함께 일할 수 있어 든든하다고 한다. 세상을 품은 그녀의 가슴은 따뜻하고도 넉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