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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과학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과학부장 김은미 동문

  • 등록일2021.11.09
  • 4468

1887년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인 보구녀관을 창립하고, 1945년 약학대학과 의학대학, 1982년 자연과학대학, 1996년 세계 최초의 여성 공과대학을 설립한 이화는 우리나라의 의학·약학·과학·공학 분야를 이끄는 여성 인재들을 배출해왔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분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NFS)에서 법과학부 업무를 총괄하시는 김은미 동문(약학과·86년 졸)입니다. 32년간 마약 분석 분야의 연구 개발을 이끌어 왔으며, 최근 법과학부장으로 승진하셨는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는데요. 김은미 동문과의 인터뷰 바로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화여대 약학과를 1986년도에 졸업하고 지금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과학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은미입니다. 


Q. 법과학부장으로 승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1989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입사하여 올해 32년 되었습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8월에 법과학부장으로 승진하게 되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제 정년까지 3년이 채 안 남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며 더욱 낮은 자세로 직원들과 소통하는 간부가 되고 싶습니다. 


Q. 동문님께서 담당하고 계시는 업무에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국과수에 입사하여 처음 6-7년 동안은 주로 변사자의 생체시료(위내용물, 혈액, 조직 등)에서 사인(死因)이 될만한 약물, 독극물, 농약 성분 등을 검출하는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 후 마약류 투약이 의심되는 피의자들로부터 압수한 각종 증거물(주사기, 정제, 불상의 식물 엽, 미상의 액체 등등)과, 이들에게서 채취한 생체시료(소변, 혈액, 모발 등)에서 마약 성분을 검출하는 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특히 부장으로 승진하기 직전까지는 마약 투약자의 모발에서 마약 성분을 검출하는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따져보면 처음 6-7년을 제외하고는 마약 분석 업무만 25년 이상 수행한 셈입니다. 

지금은 법과학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국과수에는 크게 3개의 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법의학부, 법과학부, 그리고 법공학부가 그것입니다. '법의학부'는 주로 의사들이 근무하며 부검을 시행하여 각종 변사사건의 사인을 규명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관할하고 있는 부서인 '법과학부'는 유전자과, 독성학과, 화학과의 3개 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전자과는 유전자(DNA) 분석을 통한 신원확인·개인식별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독성학과는 약독물 분석을 통한 변사자의 사인규명·마약검사·부정식품 감정 등을 담당하고, 화학과는 음주·성범죄·화재사건 등을 통한 화학성분 감정을 통해 원인 규명을 하고 있지요. '법공학부'는 각종 안전사고, 화재사고, 교통사고의 현장분석을 통한 사인 규명을 담당합니다. 

Q. 국과수 연구원으로 일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2019년 ‘강남 버닝썬 클럽 마약투약사건’ 관련하여 연예인을 대상으로 경찰청에서 대대적인 마약수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연예인 박모 씨 체모에서 마약성분인 필로폰(메트암페타민)이 검출되었던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박 씨는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본인은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호소하였지만, 결국 국과수에서의 마약분석 결과를 인정하고 투약을 자백하였습니다. 본 사건을 계기로 마약 남용자들에게 ‘마약은 반드시 몸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Q. 동문님께서는 법독성학자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과수에서 다루는 시료는 어찌 보면 위험하고(danger), 더럽고(dirty), 어렵다고(difficult)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는 것이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마약 분석은 나의 실험 결과가 한 사람의 유죄, 무죄를 결정짓기 때문에 한 치의 실수나 오차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실험할 때 항상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국과수 연구원(또는 법독성학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직, 책임감, 그리고 연민입니다. 분석 결과에 따라 범죄의 유무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국과수 연구원은 실험에 임할 때 항상 정직해야 하고, 또 자신의 분석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듯이 범죄자를 대할 때 연민을 갖고 대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Q.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하시고 병원에서 일을 하시다가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1986년에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때는 학비라도 벌어 보고자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병원 약국에서 야간약사로 일했었어요. 그곳에서 약 2년 5개월 정도 근무를 했는데 밤에 병원에서 조제 업무를 하다 보니 자연히 잠을 자는 시간이 적어져서 몸에 무리가 왔고 결국 제가 일하던 병원에 환자로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었지요. 그래서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한 후 병원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때부터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직장 문화는 남녀차별이 뚜렷했습니다. 결혼과 함께 찾아오는 임신, 출산 및 육아를 책임지며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승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공직사회가 사기업보다는 남녀차별이 적어서 공평하게 경쟁해서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는 공직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고, 제가 석사과정까지 공부했으니까 이왕이면 연구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국과수가 두 가지의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었습니다. 

Q. 동문님께서 지금의 일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되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 분석 결과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던가, 새로운 분석법을 개발하여 그동안 미궁에 빠져 있던 사건을 해결하였다던가 하는 경우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보람을 느낍니다. 그중 하나가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 모발 분석법’을 개발한 것입니다. 

프로포폴은 전신마취의 유도, 유지 및 인공호흡 중인 중환자의 진정 목적으로 사용하는 수면마취제입니다. 과거에는 위나 대장 내시경을 할 때 수면 목적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밀크색을 띠는 불투명 약물이므로 일명 ‘우유주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프로포폴이 문제가 되었던 까닭은 의료 목적보다는 다행감, 환각을 목적으로 연예인들 사이에서 많이 남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로포폴은 마약류가 갖는 특징인 중독성, 금단 증상, 내성이 있기 때문에 한번 시작하면 끊기 어렵고 또 계속 약의 용량을 증량하거나 투약 횟수를 늘려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2009년 세계적인 가수 마이클 잭슨이 잦은 성형수술 등으로 늘 통증과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프로포폴을 자주 투약하였고 결국 과량투여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프로포폴의 남용이 사회문제가 되자 2011년 2월 정부는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하여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하였고, 남용자로부터 프로포폴 투약을 증명할 수 있는 분석법 확립이 시급해졌습니다. 당시 저희 팀원들이 4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연구에 매달린 결과 2013년 1월 모발 중 프로포폴 분석법을 개발하였습니다. 본 시험법은 세계 최초로 분석법을 확립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Q. 이화 재학 시절 동문님은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일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나고 자라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와보니, 처음에는 많이 낯설고 친구도 없고 해서 조용히 학교와 집만을 오가던 생활을 했습니다. 기억나는 동아리 활동으로는 당시 특이하게 약학대학 내에 있었던 ‘연극반’에 들어가 일 년간 활동하면서 두 번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연극반 지도교수님은 지금은 돌아가신 윤혜정 교수님이셨는데 #약제학 을 강의하셨습니다. 무대 공연을 며칠 앞두고 연극반원들이 분주하게 연습하던 때, 조용히 객석에 앉아서 무대의상을 손수 바느질하면서 수선해 주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Q. 동문님의 앞으로의 목표나 삶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마약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해왔기 때문에 마약 없는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제 전문지식과 노력을 집중하여 새로운 감정기법 개발을 하는 것이 우선 목표이고, 은퇴 후에는 재능기부 등의 방식으로 개발국에서 과학수사 발전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Q. 동문님께서 바라는 미래, 그리고 이화와 이화인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이화인의 강점은 ‘다양함 속에서의 조화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신입생 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화 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배려했던 경험들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아오는데 탄탄한 기초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양함이 모여서 조화를 이룰 때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이 정신을 지켜간다면 우리 이화와 이화인의 미래는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이화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즐거운 일을 해라’입니다. 제가 국과수에서 30년 이상 근무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곳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라는 얘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유명한 여성 언론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공하려면 버텨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때로는 힘들고, 지겹고 어려운 시기가 있습니다. 끈기를 갖고 버텨보는 자세도 앞으로의 인생에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버텨서는 무의미하지요. 준비하면서 버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늘 공부하고 배우는 자세로 버티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과학부장으로 계시는 김은미 동문을 만나 보았는데요.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고 조언해 주신 동문님의 말씀이 수많은 갈림길 위에 고민하고 있을 이화인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투리 역시 오늘도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화인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 이화투데이 리포터 13기 기하경